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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뉴욕 양키스는 어떻게 양키스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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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뉴욕 양키스는 어떻게 양키스가 되었나?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21.05.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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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의 로고

메이저리그(MLB) 야구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메이저리그에 30개팀이 있지만 젊은 층이 선호하는 볼캡은 그 숫자가 확 줄어든다. 어느 팀 모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을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아마도 1·2·3위 안에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보스턴 레드삭스가 들어가지 않을까. MLB 매장에 들어가 한번 휙 둘러보면 모든 게 설명된다.

LA 다저스가 상위에 올라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박찬호와 류현진이 오랫동안 LA다저스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뉴욕 양키스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월드시리즈 27회 우승을 자랑하는 MLB 최고의 명문 팀이기 때문에? 양키스가 선호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뉴욕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뉴욕은 미국에서 한국인이 가고 싶어 하는 도시 1위다. 세계인을 대상으로 물어봐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이면서 미술·재즈·패션·영화·뮤지컬의 중심 도시가 뉴욕 아닌가.

김광현의 소속팀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양키스 다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11회)가 많지만 카디널스 볼캡은 생각만큼 자주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으로 미뤄 양키스 볼캡을 구매하는 것은 프로야구팀 양키스에 대한 선호라기보다는 뉴욕에 대한 선망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여기에 NY가 디자인적 세련미가 있다는 점도 추가된다.

 

 

 

 

 

뉴욕 양키스 야구 모자. 조성관 작가 제공

 

 


"네덜란드 x들!"

영어 이름 중에서 가장 흔한 남자 이름이 존(John)이다. 존 말코비치, 존 쿠삭, 존 보이트, 존 트래볼타, 존 레논, 존 웨인, 존 매캐인, 존 F 케네디···.

'존'은 세례자 요한에서 파생한 남성 이름이다. 어부였던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골고다 언덕에서 이를 지켜본 사람이다. 나머지 11명의 사도는 성난 군중의 겁박에 지레 겁을 먹고 몸을 숨겼다.

존은 독일어에서는 '요한' '한스'(Hans)로, 러시아어에서는 이반(Ivan)으로 각각 바뀌었다. 네덜란드와 체코에서는 존이 얀(Jan)으로 변형됐다.

뉴욕 맨해튼에 오랜 세월 터 잡은 이들은 알공킨어(語)를 쓰는 원주민이었다. 원주민의 터전에 처음 상륙한 백인은 17세기 해양강국 네덜란드인이었다. 이들은 1625년 맨해튼 남부에 모피거래소를 설치하고 이 새로운 정착지를 '뉴 암스테르담'으로 불렀다. 1626년 원주민으로부터 땅을 매입한 뒤 본격적으로 이 지역을 개발했다. 본국에서처럼 풍차도 세웠고 암스테르담처럼 오밀조밀한 거리를 조성하고 집을 지었다. 네덜란드 총독은 1653년 네덜란드 구역을 표시하고 원주민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담장(Wall)을 길게 세웠다. 뉴 암스테르담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해 인구가 9000명에 이르렀다.

 

 

 

 

 

 

 

1660년의 뉴 암스테르담 지도. 오른쪽에 세로로 보이는 것이 시 담장(wall)이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현재의 '로워 맨해튼'(Lower Manhhattan)에는 네덜란드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시청 옆의 석조건물에는 'NEW AMSTERDAM'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브로드웨이(Broadway)를 보자. 영화·연극·뮤지컬 극장이 몰려있는 극장가를 브로드웨이라 부른다. 여기서 파생된 용어가 '오프 브로드웨이'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다.

브로드웨이는 네덜란드어 '브리드 웨이'(Breede Wegh)에서 유래했다. 브로드웨이 기점(起點)이 바로 로워 맨해튼이다. 로워 맨해튼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모눈종이처럼 자로 잰 듯 반듯한 도로들이 맨해튼 남쪽에 이르러서는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좁아진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장편애니메이션 '소울'에 보면 로워 맨해튼 지도가 입체적으로 나온다.

네덜란드인 다음으로 맨해튼에 상륙한 이들은 영국인. 복잡한 국내정치 상황으로 인해 뒤늦게 맨해튼에 관심을 가졌다. 매사추세츠·버지니아를 중심으로 뉴잉글랜드 지역을 차지한 영국인들은 물리적으로나 네덜란드인들을 압도했다.

 

 

 

 

 

 

 

로어 맨해튼 시청사 인근의 뉴 암스테르담 글씨. 조성관 작가 제공

 

 



영국은 맨해튼의 주도권을 놓고 네덜란드와 힘겨루기를 벌인다. 이때 영국인이 네덜란드인을 깔보며 부르기 시작한 말이 양키(Yankee)다. 얀(Yan)이라는 성(kee)을 가진 네덜란드 사람이 많다는 데서 '양키'가 나왔다. '네덜란드 x들'이라는 경멸의 뜻이 양키다. 영국은 1664년 마침내 맨해튼에서 네덜란드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40년 만에 네덜란드의 맨해튼 시대는 끝이 났다. 영국은 새로 점령한 바닷가 땅을 왕세자 요크 대공(Duke of York)의 이름을 따서 'New York'으로 명명한다.

'콜드 마운틴'과 같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을 다룬 영화를 보면 남군들이 북군들을 향해 저주하듯 내뱉는 말이 나온다.

"양키 x들"

'네덜란드 x들'이라는 비속어 '양키'가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언제부턴가 미 동북부 사람을 지칭하는, 북군의 대명사로 바뀌었다. 남북전쟁에서 노예제 폐지 입장에 선 북군이 승리하면서 양키는 다시 미국인 전체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반미시위 현장에서 한때 등장했던 구호가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다.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메이저리그에서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이 양키스와 메츠다.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 것을 '서브웨이 시리즈'(subway series)라 부른다. 메츠는 메트로폴리탄의 줄임말이다.

뉴욕 양키스는 역사가 12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의 전설 같은 팀이다. 창단 당시의 이름은 뉴욕 하이랜더스. 홈구장이 맨해튼 북쪽에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뉴욕 프레스의 야구 기자 짐 프라이스는 기사를 쓰면서 하이랜더스 대신 부르기 쉽고 눈에 잘 띄는 '양키스'라고 썼다. 야구팬들도 입에 착 붙는 '양키스'로 부르길 좋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구단은 1913년 아예 팀 이름을 '뉴욕 양키스'로 바꾼다. 홈구장은 양키스타디움.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전통의 야구팀이 '양키스'가 된 것은 뉴욕 역사의 뿌리를 찾아간 귀결이다.

 

 

 

 

 

 

 

1954년 1월, 결혼 직후의 몬로와 디마지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뉴욕 양키스가 야구 왕조(王朝)로 우뚝 선 것은 1920~1950년대다. 30년 동안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자그마치 18회 차지했다. 1920년대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이적해온 베이브 루스가 바람을 일으켰다. 홈런을 펑펑 쏘아대는 베이브 루스로 인해 양키스는 1920년대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연거푸 안았다. 80년간 레드삭스를 악몽처럼 괴롭혔던 '밤비노의 저주'는 여기서 기원한다.

1930년대 양키스는 강타자 루 게릭을 앞세워 강팀의 전통을 과시한다. 루 게릭은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된 첫 번째 선수다. 루 게릭은 근육 수축병으로 야구계를 떠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 근육병을 '루 게릭 병'이라고 부른다.

양키스 왕조를 빛낸 또 다른 전설의 타자는 1940년대~1950년대를 풍미한 조 디마지오다. 디마지오는 양키스 소속으로 모두 열 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아홉 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현역에서 은퇴한 그를 기념하기 위해 1952년 양키스는 그의 등 번호 5번을 영구 결번으로 등록했다. 마릴린 먼로의 두 번째 남편이기도 한 디마지오는 56게임 연속안타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뉴 암스테르담'에 어원을 둔 양키스는 한국인의 문화생활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안개 속의 두 그림자' 등을 히트시킨 밴드 '함중아와 양키스'. 비음 섞인 허스키 보이스로 큰 인기를 끌었던 리드 보컬 함중아와 정동권이 모두 타계하면서 '함중아와 양키스'는 유튜브로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을 여행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곳 중 하나가 월가로 불리는 월스트리트(Wall street)다. 증권거래소 부근에 놓인 황금빛 '돌진하는 황소' 주변은 날씨 좋은 날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만든 나라는 네덜란드다. 1609년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소가 암스테르담에 설립되었다. 배당금, 투자이익과 같은 개념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암스테르담의 증권거래소를 모방해 수도에 증권거래소를 열었다.

100년 뒤 영국은 '로워 맨해튼'에 주식거래소를 열었다. 이곳은 원래 말을 거래하는 장소였다. 이곳에 네덜란드인이 외적의 침입을 막으려 세운 긴 담장을 영국인이 헐어버렸고, 담이 있던 길이라는 뜻으로 Wall street라 부르게 된다.

뮤지컬 극장과 휘황찬란한 광고탑이 몰려 있는 타임스퀘어는 42번가에서 46번가 사이를 지칭한다. 42번가 W에 '뉴 암스테르담 극장'이 있다. 1903년 문을 연, 아르누보 스타일의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극장이다.

 

 

 

 

 

 

 

1952년 뉴욕 양키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결정된 디마지오의 백넘버 5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LA 다저스에서 아메리칸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팀을 옮기면서 우리는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볼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뉴욕 양키스는 같은 아메리칸리그 소속으로 동부 지구에서 순위 다툼을 하는 팀이다.

양키스는 유니폼에 등 번호만 있지 선수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 선수 개인보다 팀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양키스가 홈경기 때 입는 유니폼 '핀 스트라이프'는 이 세상 모든 야구 선수들의 로망이다.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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