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 day 1
발틱 3국을 여행하기 전 정보들을 찾아볼 때 발틱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순으로 내려가는데 그 순서대로 나라들의 경제 수준이 낮아진다고 했다. 그래서 물가도 에스토니아가 제일 높고 리투아니아 물가가 제일 낮다고 말이다. 에스토니아만 해도 핀란드에 비하면 물가 부담이 덜하긴 했었다. 그래서 헬싱키에선 구경만 했던 기념품들을 탈린에선 덥석덥석 집어들을 수 있었지만, 무게 때문에 쉽게 사지는 못했다. 그때 가방 무게 때문에 사지 못한 멋있던 나무 도마들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그때 사왔어야 했는데... 역시 쇼핑 이즈 타이밍인 것이다.
4시간여 버스를 타고 라트비아 리가에 도착했다. 여기 장거리 버스들은 우리나라 고속버스들처럼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쉬지를 않았다. 대신 버스 안에 화장실이 있어 그걸 이용하면 된다. 호텔에 도착한 친구와 나는 점심을 제대로 먹질 못해 저녁은 맛있는 걸 먹고 싶어 호텔 근처에 한식당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찾지를 못하고 대신 아시안 레스토랑이 있어 한번 가보기로 했다.
호텔을 나와 아시안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길에 보았던 리가의 일몰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아 바로 사진으로 그 경치를 담았다. 공기도 좋고,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은 리가의 첫 느낌이 왠지 이곳에서의 여행이 맘에 들것만 같았다.
구글맵에서 찾아보고 간 아시안 레스토랑은 막상 가보니 오리지널 아시안은 아니고 퓨전 아시안 레스토랑이었다. 동남아 요리와 중국 요리, 일본 요리들이 섞인 느낌의 음식들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볶음밥, 미역국, 우동을 시켰는데 볶음밥 빼고는 뭔가 레시피들이 이 나라 저 나라 것들이 섞인듯한 모양의 음식들이 나왔다. 매일 한식을 먹고 사는 우리들의 눈엔 재료의 조화들이 좀 낯설었지만, 예상외로 맛은 나쁘지 않아 친구랑 한국 돌아가면 이런 것들을 재료로 넣어 요리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고까지 얘기했었다.
리가에 도착한 첫날 밤에 내리던 비가 오전까지 이어져 리가에서의 둘째 날은 좀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호텔에서 리가의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공원이 있는데 비가 그치고 난 후 비에 젖은 땅에서 나는 냄새들과 나무 냄새들 때문에 그 공원을 지나가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리가의 올드타운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중세 유럽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리가에서는 전망대로 세인트 피터 교회가 유명하다고 해서 가보기로 했는데 친구와 탈린의 올라프 성당처럼 걸어 올라가야 할까 봐 걱정부터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세인트 피터 교회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9유로를 내긴 해야 했지만 미친 듯이 뛰는 나의 심장을 다시 한번 느껴보지 않아도 되는 거에 9유로가 대수겠는가!
삐걱거리는 불안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세인트 피터 교회 전망대는 올라가자마자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전망대 오르니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한 뷰와 멋진 하늘이 계속 그 풍경을 쳐다보게 했다. 탈린의 전망대에서 올드타운을 보는 느낌과는 다르게 리가의 전망대는 더 멀리까지 보여서 올드타운의 중세 유럽 모습과 현대 건물이 지어진 신시가지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옛 유럽의 모습과 현대식 빌딩이 있는 모습을 한꺼번에 보니 서양인들이 서울에 와서 경복궁과 빌딩들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이런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할 때 나는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음식을 즐겨보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해외 여행지에선 한 번도 한식당을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장기 여행이기도 하고 나도 나이가 들어 그런지 서양식 요리들이 별로 맛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은 어제 저녁 인터넷에서 찾아 두었던 한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이게 며칠 만에 제대로 먹어보는 한식이었던가. 설악산이라는 이름의 한식당에 들어서니 요즘은 이곳에서도 KPOP이 유행인지 커다란 티비 화면에서 한국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인테리어도 볏짚 모양의 지붕과 한옥 느낌의 칸막이들로 한국 느낌을 제대로 내고 있었다. 나는 간만에 칼칼한게 먹고 싶어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요리사분이 진짜 한국분이신지 제대로 한국 맛이었다. 가격도 9유로 정도로 적당하고 반찬도 개수는 한국보다 적었지만, 맛은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정희진> 트래블러뉴스 프리랜서 여행기자. 한국전통문화 인터넷 방송, 야후, 기초과학연구정보센터 등에서 컨텐츠 관련 일을 오래 함. 친구와 같이 떠나는 여행도 좋고, 홀로 가는 여행도 좋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