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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동거 : 구절초와 양귀비 ⓒ 오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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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동거 : 구절초와 양귀비 ⓒ 오내영
  • 오내영(여행작가)
  • 승인 2021.07.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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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수목원에서 발견한 구절초와 양귀비. 이렇게 다른 두 컬러가 이렇게 나란히 곁을 지키고 있다니, 예쁘고 애틋했다. ⓒ 오내영
한밭수목원에서 발견한 구절초와 양귀비. 이렇게 다른 두 컬러가 이렇게 나란히 곁을 지키고 있다니, 예쁘고 애틋했다. 

나는 두루마리휴지의 끝을 바깥쪽으로 향하게 걸고, 신랑은 안쪽을 향하게 건다. 나는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입구를 가로로, 신랑은 세로로 돌려놓는다. 나는 떡볶이를 먹을 때 떡만 골라 먹고 신랑은 얇은 어묵만 쏙쏙 가려 먹는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차이는 작지 않다.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입구 방향은 가끔 부애가 나기도 한다. 어떻게 바람 입구를 세로로 놓고 머리를 말릴 수가 있단 말인가.

순간의 불편함만 참는다면 사실 대수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텐데, 싶지만 막상 당해보면 불편하고 귀찮고 순간 욱,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우리는 잘 산다. 그러려니 하고 난 뒤로는 신기하네, 어떻게 이러지? 갸웃할 뿐 화가 나는 일은 도통 없다. 그렇게 우리는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잘 어울린다.

구절초와 양귀비가 나란히 서 있는 거 뭐, 바람 탓일 게다. 어찌어찌 실려온 두 씨앗이 다툼 없이 잘 자란 것에 무슨 의도나 작정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신기한 게 보이는 건 우리 사람의 눈일 거다. 다른 것들끼리의 조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사례를 우린 너무 많이 보아왔으므로. 그래서 그냥 그렇게 된 것뿐인 두 꽃의 이질적인 컬러 조화가 내 눈엔 참 착해보이고 대견해보인다. 

하양, 노랑, 빨강의 확연한 대비라 눈이 더 시원하다. 참, 예쁜 것들. 둘다 꽃이라는 대제는 분명할 테니 서로 의지하며 바람을 견디며 그렇게 잘 자라렴. 오늘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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