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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 ④ 열정의 아나운서 윤영미의 '행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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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 ④ 열정의 아나운서 윤영미의 '행복 여행'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19.10.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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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경력의 베테랑 아나운서, 최초의 여자 프로야구 캐스터, 최초의 아나테이너, 최초의 고등학생 지하철역 아나운서 등 윤영미의 이름 석 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여러 개다. 게다가 언제나 '최초'가 붙는다. 그만큼 호기심이 충만하고, 원하는 걸 일궈내는 데 있어 주저함이 없는 열정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최근 '베테랑 국내 여행자'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유쾌한 웃음만큼 신명나는 발걸음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닌 그녀의 여행 그리고 인생 이야기

건축가 김호중이 오픈한 카페 '스페이스M'에서 윤영미 아나운서 ⓒ강신환

윤영미를 왕성한 여행자로 이끈 건 유쾌한 호기심

요즘은 얼굴책(페**북)을 통해 타인의 소식을 접하는 횟수가 잦다. 열정의 아나운서 윤영미의 근황도 그렇게 알게 됐다. 홍보대행사를 운영하는 후배가 그녀의 출판기념회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새빨간 드레스 차림의 윤영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고혹적이었다. 경력 35년의 그녀가 낸 책이 <__여,행하라>(키이츠 출판)는 반가운 제목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더니 30분 만에 답장이 떴다.

“좋아요!”

다음날 아침,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만난 곳은 혜화동에 새로 문을 연 카페 ‘스페이스 M’. 건축가 김호중이 자신의 사무실 건물 1층과 지하를 개조해 만든 아담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니 그 전날 밤 윤영미의 두 번째 출판기념 파티가 열린 장소이기도 했다. 주인장 말에 의하면 ‘그렇게나 많은 유명인들이 새벽까지 춤추고 노래 부르며 흥겹게 노는 모습’은 처음 보았단다.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부른 자리였어요. 이번 책을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이죠. 대부분 아티스트들이고요.”

초대객 명단을 보니 과연 그렇게 말할 만하다. 건축가 승효상, 음악감독 전수경, 블루스 싱어 강허달림, 패션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정가(正歌) 가수 정마리, 예술통 축제 문화 기획자 박동훈 등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모두 윤영미와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그녀에게 멋진 여행지를 추천해준 친구들이라는 점. 여행은 누구와 함께 떠나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녀 주위엔 이미 멋진 동반자들이 그득한 셈이다.

담양,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최연돈

“저는 언제든 여행 갈 준비가 돼 있어요. 친구들 하고 얘기하다가 충동적으로 길 떠난 적도 많구요. 사람이 에너지를 받는 방법은 다양한데, 저에겐 여행이 늘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도 2년 만에 70여 군데를 다녀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녀의 새 책에 언급된 여행지 개수가 대충 그 정도인데, 아무리 국내여행이라 해도 당일치기로는 어려운 지역들이 꽤 많다. 멀리 제주도부터 담양, 산청, 밀양, 구례, 고창, 순천, 남해, 인제 등 전국각지를 두루 훑고 다닌 느낌이다. 게다가 ‘그 도시에 그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문화명소, 세련된 건축물 등이 포함돼 있어 읽는 내내 신기함마저 느끼게 한다. 예를 들면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군위란 동네에 수십만 평에 달하는 수목원(思惟園, 사유원)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구의 한 철강회사 회장이 삼십대 중반부터 직접 나무를 심어 정성껏 가꾸었다는 그곳엔 마치 천상으로 오르는 길 같은 멋진 건축물까지 세워져 있지만 아직 일반에겐 공개가 안된 곳이다. 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어도 한국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에서 보낸 스릴 넘치는 하룻밤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서 이런 정보들을 얻은 것일까?

“지인들에게 들은 것도 있지만 방송이나 책, 잡지 등을 꼼꼼히 봐요. 좋은 데 있으면 즉시 메모해두었다가 반드시 갑니다. 제가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이라서 궁금한 건 못 참아요!”

인제와 양구 경계에 있는 국내 람사르 습지 1호 '대암산 용늪'에서 ⓒ장현근
인제와 양구 경계에 있는 국내 람사르 습지 1호 '대암산 용늪'에서 ⓒ장현근

아나테이너도, 여행도 알고 보면 눈물 나는 노력의 산물

7년 전 프리랜서를 선언한 그녀는 지방강의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부지런한 그녀는 현지에 간 김에 근처 명소를 들렀다 오는 경우도 많다. 아나운서라는 이력 덕분인지, 수강 후 지역민들이 초대해주는 사례도 왕왕 있고, 근처의 유명한 스님, 장인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해외여행의 기회도 적지 않은 그녀가 책의 목차를 국내 여행지로만 한정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까.

바위산 암벽 위에 지은 구례 '사성암' ⓒ최연돈

“일단 국내여행은 비용부담이 덜하잖아요. 더 큰 이유는 뭔가 일이 잘 안 풀려 당장 기분전환하고 싶을 때 복잡한 절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거죠.” 

국내 여행지는 사계절 변화가 뚜렷해 갈 때마다 풍광이 달라지기 때문에 늘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는 장점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된 최근엔 익숙한 여행지 근처에 새롭고 멋진 건물들도 많이 들어서 과거와 비교하며 추억을 곱씹는 재미도 쏠쏠하단다.

“저는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 여행지를 선호해요. 단순한 힐링보단 하나라도 자극을 받는 사물이 있어야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니까. 근사한 미술관, 뮤지엄, 호텔, 고찰 등을 둘러보는 걸 좋아하는데, 요즘은 지방에도 그런 장소들이 진짜 많더라구요.”

고구려 시대 성곽터, 연천 '호로고루'
고구려 시대 성곽터, 연천 '호로고루'에서 ⓒ장현근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연천에는 ‘호로고루’라는 고구려 때 성곽이 남아 있는데, 그 야트마한 언덕에 계단을 만들어 언덕 끝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들었다. 바람 부는 날 그곳에 올라 바라본 주상절리의 바위벽과 파란 하늘. 그날따라 얇고 긴 외투를 덧입었던 그녀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던 모습은 그야말로 ‘ 장엄한 인생 컷’이었다.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들을 직접 가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그녀의 책에는 각 여행지마다의 매력이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에 잘 녹아들어 있다. 곳곳에 적절하게 인용된 시구도 그렇지만 함께 여행한 친구, 후배들, 현지 사람들 이야기가 실제 그녀와 함께 여행을 떠난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말 잘하는 아나운서인 줄만 알았던 그녀는 언제 이렇게 글 솜씨까지 곱게 다져왔을까? 윤영미는 과찬이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슬그머니 웃는 표정이다.

“제가 국문과 출신이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글 읽고 발표하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방송에서 칭찬 받은 뒤 내내 아나운서가 제 천직이라 생각했다니까요. 고등학교 때는 지하철역을 찾아가 직접 쓴 원고로 차내 방송을 한 적도 있죠. 방송을 할 때도 웬만한 원고는 제가  쓰는 경우가 많았어요.”

여담이지만, 아나운서가 되려는 그녀의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무려 10번의 도전 끝에 지방 방송국(춘천 MBC)에 입사했고, 서른 살 나이에 서울 SBS로 올라왔다. 아나운서 윤영미란 이름 앞에 ‘7전8기로 꿈을 이룬 아나운서’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재주 많고 학벌 좋은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녀의 도전이야말로 진짜 눈물 난다. 어지간한 남자 아나운서들도 기피하는 스포츠 중계방송 중에서도 제일 복잡하고 숨 가쁜 야구 중계방송을 6년이나 했다. 덕분에 ‘한국 최초의 여자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란 타이틀을 거머진 뒤에는 아예 망가지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어필했다. 2006년 추석 특집방송-아나운서 장기자랑 때 일이다.

“아 그거요? 제가 좀 튀어보려고 가수 신신애 씨 흉내를 냈죠.(웃음) 평소 또박또박 표준어만 구사할 것 같은 아나운서가 촌스런 한복 입고 각설이춤까지 췄으니 얼마나들 뒤집어졌겠어요? 그날 대상은 당연히 제 차지였죠.”

그 일을 두고 방송국 내에서 뒷말이 없지는 않았다. 아나운서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느니, 어쩌니...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아나운서라고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뒷전에 얌전히 않아 있어야만 하나? 신신애씨를 찾아가 그녀에게 직접 노하우까지 전수받았으니 나름 노력을 한 거라는 자부심도 없지 않았다. 그 이후 그녀에게 붙여진 또 하나의 호칭은 ‘아나테이너‘,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를 합친 말이었다. 그녀 말마따나 한번도 ’대세 아나운서‘였던 적은 없지만,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윤영미의 진가가 잘 발휘되었음은 물론이다.

섬진강이 보이는 구례 대나무숲에서 ⓒ최연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녀의 신조는 여행 스타일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방송 일 외에도 책, 영화, 음악, 건축, 사진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관련 테마 여행지를 적극적으로 찾거나 연관시킬 때가 많다. 한 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제 길을 찾아 나선 두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일 때는 더 그렇다.

“둘째 아들이 건축을 전공하기 때문에 국내 유명 건축가가 지은 펜션, 교회, 고찰 같은 곳에 자주 데려갑니다. 미국 유학 중이어서 외국에서 멋진 건물들을 많이 봤을 텐데도 자주 감탄하는 걸 보면 엄마로서 뿌듯해요.”

아들과 함께 거제도 ‘지평 집’이란 펜션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이 펜션은 지형과 나무 위치를 고려해 건물을 지평선 아래로 지은 게 특징이었다. 펜션 안에서 보면 발 아래 바다와 산으로 싸인 둘러쌓인 느낌이 마치 어머니 품처럼 안온하다. 그녀의 아들은, 한폭의 동양화 같은 그 풍광을 보고 ‘바다가 많은 한국의 자연과 정말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그런 아들을 위해 가끔은 건축가와의 만남, 여행을 주선하는 경우도 있다니 그녀도 어쩔 수 없는 극성 엄마인 셈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녀의 남편은 목사이다. 35살 때 작은 출판사 직원이었던 그와 만났고, ‘곁에 있으면 웬지 마음이 편하다’라는 이유로 결혼했다. 신혼 때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남편이 뒤늦게 신학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그녀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었다는 그녀. 35년 경력의 아나운서가 변변한 명품 백 하나 없고, 골프도 못 배웠지만 남들 못하는 문화생활을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뿌듯해 할 줄 안다. 프리랜서 선언 후 1~2년 동안 일이 들어오지 않아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했을 때도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고. 글 잘 쓰는 장점을 활용해‘ 열정’이란 책을 펴낸 후 강의 요청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행복이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일 뿐이다. 어쩌다 일이 잘 안풀릴 때 훌훌 떠날 수 있는 만큼의 자유만 주어지면 족하단다. 사람에 따라서는 미지의 장소로 떠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도 있는데 그녀의 여행 일기는 늘 쾌청하다.

“그게 참 이상해요. 저만 가면 궂었던 날씨도 햇빛이 쨍 비치더라구요. 여행 가서 안좋았던 기억이 단 한 개도 없어요. 간혹 일정이 좀 틀어질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또 다른 장소를 발견해내는 우연한 재미도 있지요. 여행은 목적지로 간다는 것보다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ㅡ여,행하라 ⓒ키이츠 출판
아나운서 윤영미가 펴낸 'ㅡ여,행하라' 책 ⓒ키이츠 출판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도 <__여,행하라>고 붙였단다. 얼핏 보면 그냥 ‘여행하라’로 읽히기 쉽지만 ‘여’ 앞에 ‘__’를 붙여 ‘누구누구여, 행동하라’는 적극적인 권유를 담은 이중적 의미인 셈이다.

그녀에게 물었다. 책에 소개된 장소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 어디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대답은 명쾌했다.

“책 맨 처음에 나온 곳, 곰배령의 세 쌍동이네죠.”

독자들이 윤영미의 여행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간추려 옮겨본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엉킴으로 괴로울 때면 나는 곰배령 세쌍둥이네 펜션에 갑니다. 시집살이가 고되 친정엄마 찾아가 무르팍에 엎디어 울고 싶은 심정으로 하영언니를 찾아가면 언니는 곰배령의 취나물 엄나물, 갖은 나물 무쳐내고 김장독에서 묵은 김치 꺼내와 턱하니 옥수수 막걸리 한 병 올려놓습니다. 그리곤 인생사 우습고 별것 아닌 듯 특유의 명쾌한 어투로 내 등짐을 순식간에 내려놓게 하지요.

(중략)

지글지글 끓는 방바닥에 뒹굴거리며 떠나간 못난 놈들 욕도 실컷 하면서 컹컹 개 짖는 소리에 까무룩히 잠드는 곰배령의 밤....

읽다 보니 부럽다. 나에게도 그런 언니, 푸근한 안식처가 있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이형옥 대표와 윤영미 아나운서 ⓒ강신환
이형옥 대표와 윤영미 아나운서 ⓒ강신환

이형옥

<주부생활> 기자, <우먼센스> 편집국장을 거쳐 더북컴퍼니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싱글즈>를 창간했다. 이후 하나투어와 함께 만든 여행 콘텐츠 회사 하나티앤미디어의 대표로 재직하며 글로벌 감성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를 창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국내 유일의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의 편집 고문을 함께 역임하며 국내외 여행, 음악, 미술, 공연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 제작에 앞장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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