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3-11-20 10:15 (월)
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 ⑤ 톱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상태바
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들 ⑤ 톱스타일리스트 정윤기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19.10.30 08: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레드카펫의 빛나는 톱스타들 뒤엔 언제나 그가 있다. 25년동안 250여명의 스타들을 근사하게 빚어낸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스타일리스트 정윤기. 그는 이제 스타보다 더 주목받는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화려한 패션계의 이면에서 느껴온 쓸쓸함을 여행으로 달래온 그만의 특별한 여행 이야기.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전재호
아트북, 여행서적이 가득한 카페를 인터뷰 장소로 정한 정윤기의 센스! ⓒ전재호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스러운 스타일리스트

윤아, 정우성, 김희애, 김혜수, 고소영, 차승원, 전지현, 이승기 등 멋진 외모만큼이나 우아하고 감각적인 스타일링으로 ‘패셔니스타’라는 찬사를 달고 사는 톱스타들 뒤엔 언제나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스타일리스트 정윤기가 있다. 경력 25년의 그가 근사하게 빚어낸 스타만 해도 250여 명. 국내외 영화제, 시상식, 유명 브랜드 론칭 파티 등 초대 받은 스타의 옷차림이 행사 자체보다 더 주목 받는 화려한 자리에 그가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각종 예능프로그램 단골 패널에 패션 홍보 대행사 인트렌드 대표이사,  홈쇼핑(CJ 셀렙샵)의 호스트까지 맡고 있다.

솔직히 이쯤 되면 스타보다 더 주목 받는 인플루언서가 아닐 수 없다. 정윤기의 시그니처룩도 그의 존재만큼 인기다. 클래식한 뿔테 안경에 보타이를 매치한 댄디한 스타일링은 그의 넉넉한 체격과 두툼한 뱃집을 완벽하게 커버한다. 깍쟁이 같으면서도 유연한, 잘 차려입은 듯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매무새에 소년을 닮은 무구한 미소가 불협화음 없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그가 스타일링 해주면 나도 저렇게 도드라진 존재감을 가질 수 있구나, 하는 기분 좋은 희망을 품게 한다. 내로라하는 한국 스타뿐 아니라 지미추, 이브 살로몬, 릭 오웬스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다투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덕분에 여행은 그에게 일상이 됐다. 내가 만드는 글로벌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도 몇 년 전부터 보아왔다니 어깨가 으쓱할 일이다. 기쁜 마음에 “더 트래블러를 안다구요?” 되물으니 “여행이야말로 화려함 뒤의 허무를 달래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잖아요.(웃음)” 정윤기다운 현답이 딸려온다.

“90년대 초만 해도 패션스타일리스트는 생소한 직업이었죠. 남자는 더더군다나요. 지금은 각광 받는 직업으로 상황이 반전됐지만 바뀌지 않은 건 있어요. 스타에게 옷이 ‘날개’가 될 수 있도록 하려면 그만큼 많이 보고 앞서 가야 한다는 것! 지금도 핫한 패션의 성지라면 어디든 날아갑니다.”

그의 ‘업’은 스타가 아니라 스타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지만, 스타일리스트 본인도 걸어다니는 룩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가 꾸리는 트래블 수트는 작은 편집숍을 방불케할 정도다. 그의 상징 같은 보타이와 페도라는 물론 향수와 스카프, 피부를 가꿔주는 파우치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어째, 직접 고른 인터뷰 장소도 예사롭지 않더만!) 본인의 이미지와 훌륭하게 믹스앤매치되는, 설렘 가득한 여행서적과 패셔너블한 아트북이 멋스럽게 진열된 곳을 잘도 찾아낸 걸 보니, 역시 톱스타일리스트 정윤기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종이 냄새와 그 안에 켜켜히 쌓여 있는 새로운 지식과 활자의 향연이 너무 좋아 해외에서도 서점엔 꼭 들른다. 스타들의 레드카펫 패션을 구상할 때도 그 스타가 출연한 영화나 대본을 정독한 다음에야 콘셉트를 잡아낼 만큼 깐깐하다. 뭐든, 종이에 써져 있는 건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새기는 활자 중독이기도 한데 그런 집요함이 오늘날의 정윤기를 있게 한 동력이 됐단다.

10월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은 정우성과, 절친 고소영은 20여년째 정윤기에게 스타일링을 맡기고 있다.

어두울수록 별은 총총 빛난다

지난 10월 초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윤아, 정우성, 김희애, 정해인, 수호 등의 스타일링을 맡았고 결과는 역시나 ‘톱’이었다. 그중 영화 ‘엑시트’로 가수에서 배우로 상공적인 변신을 한 윤아에게는 날아갈 듯 하늘하늘한 노랑색 시폰드레스를 입혔고, 뭘 입어도 멋있는 정우성에겐 개막식 사회자란 역할을 고려해 클래식한 검정 턱시도를 권했다. ‘윤희에게’란 영화로 영화제 폐막식을 장식한 김희애의 스타일링은 고전적인 흰색 롱 원피스 드레스에 단단한 검정 가죽벨트로 포인트를 줬다. 영화의 내용이 잃어버린 첫사랑을 찾아 딸과 함께 설국여행을 떠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포토타임은 단 몇 분이었지만 이 찰나의 영광을 위해 그가 투자한 시간은 무려 3개월이다. 게다가 스타 한 명당 적어도 3명의 전담 직원이 있어야 할 만큼 톱스타의 스타일링은 고된 노동 중 하나다. 국내에 아직 론칭되지 않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옷을 발빠르게 공수하려면 상상 외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브랜드 홍보와 스타들의 스타일링 등을 전문으로 하는 그의 회사 ‘인트렌드’의 직원이 갈수록 늘어나는(현재 60명. 개인 홍보대행사치곤 꽤 큰 규모다) 것도 그런 이유다.

“저의 25년 여정에는 희로애락이 골고루 섞여 있어요. 남들 보기에는 화려한 직업일지 몰라도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순간이 더 많았죠. 처음 광고 촬영 때는 여기저기 옷 빌리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어요. 촬영하다 옷에 스크래치가 나면 그냥 사버려야 해서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여자 옷이다 보니 제가 입을 수도 없잖아요? 불우이웃 돕기 바자 때 한꺼번에 내놓곤 했지요.”

지금도 하루 대여섯 건씩 일을 하지만 생각보다 큰돈을 벌기는 어려운 직업이라고 덧붙인다. 업계 친한 사람들이 많은 데다 마음이 약해서 돈을 많이 못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새 옷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흥분이 일을 계속하게 되는 이유다. 사실 돈은 그보다 ‘늦게 시작한 후배들이 더 잘 벌더라’며 웃는 그에게서 화려한 세계 뒤에 감춰진 이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두울수록 별이 더 총총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스타를 빛내려면 제가 더 고통스러워야 하더라고요.(웃음)”

ⓒ인트렌드
2020 SS 컬렉션을 선보인 밀라노 패션위크에서 맨 앞좌석 자리로 우대받은 정윤기ⓒ인트렌드

해외여행도 마찬가지. 엄밀히 말하면 여행이 아니라 업무지만,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의 4대 패션위크는 아파 쓰러지더라도 꼭 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자존심을 건 패션 컬렉션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치열한 전쟁터에 정윤기가 빠질 수 있겠나. 그가 일을 시작하던 90년대 초만 해도 이 패션쇼를 참관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전 세계 셀러브리티와 관계자가 몰려들기 때문에 그 당시 한국에는 초청장이 잘 배정되지 않았던 것.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한류스타와 K패션의 역량이 전 세계 패션계의 인정을 받고 있고, 무엇보다 '정윤기'라는 이름 석자가 명품 판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들도 인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런웨이에선 역지사지의 유쾌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마 90년대 후반이었을 거예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란 디자이너에게서 밀라노 패션위크 초청장을 받았어요. 좌석표를 보니 ‘S’로 표시돼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한국 스타일리스트를 이제야 ‘스페셜’로 대접해주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S’가 스페셜이 아닌, ‘스탠딩’이더라구요. 그쪽 사람들 키가 커서 쇼 내내 까치발로 서 있던 기억이 납니다."

20년 후인 올 가을, 그는 밀라노 패션위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뒤의 스탠딩 좌석이 아닌 프런트로(맨 앞줄)에 당당히 앉았다. 그것도 단순한 취재진이 아닌, 디자이너의 협업자 자격으로. 전 세계 셀럽이 애정하는 구두 디자이너 지미추가 새로운 스니커즈를 런칭하면서 한국 스타일리스트인 그를 협업자로 선정한 것이다. 화려한 다이아몬드에 네온컬러를 덧입힌 그 신발 밑바닥에는 ‘지미추 x 정윤기’라고 써져 있다니, 과거 홀대당했던 무대에서 그보다 통쾌한 복수극이 또 있을까?

가장 스타일리시한 도시 파리에서 ⓒ인트렌드
가장 스타일리시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파리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꼭 들르는 서점 ⓒ인트렌드

최초에서 최고가 된 정윤기, 그의 패킹 레시피는?

이처럼 십여 년 넘게 빼놓지 않고 다녀온 4개의 패션위크 중 그가 가장 스타일리시하다고 느끼는 도시는 어디일까?

“단연 파리죠. 가장 비중 있는 디자이너들이 가장 탁월한 쇼를 선보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불황 여파로 다른 도시들은 여성복 쇼 기간을 5~6일로 줄였는데, 파리는 아직도 10일 동안 계속됩니다. 발렌티노를 비롯한 이탈리아 디자이너들도 파리에서 쇼를 하는 경우가 많을 만큼 여전히 세계 유행을 선도하죠. 그중에서도 샤넬, 에르메스 브랜드의 쇼는 최고예요.”

얼마 전 작고한 샤넬 브랜드의 수장 칼 라거펠트는 해마다 쇼장을 독특한 분위기로 꾸며 스타일리스트로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 2019 SS(스프링, 섬머) 시즌 컬렉션 때는 유서 깊은 그랑팔레 안에 모래를 깔고 인공 파도를 설치해 해변 분위기를 연출, 탄성을 자아냈다.

젊은 디자이너들 무대가 돋보이는 런던은 힙합 문화와 클래식이 공존하는 도시로서 새로운 문화를 가장 빨리 흡수하는 도시라고. 특유의 흐린 날씨마저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 도시는 여름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포토벨로나 노팅힐 같은 노천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디자이너 손정완이 10년째 컬렉션을 선보이는 뉴욕은 가슴을 펄떡이게 하는 문화의 다양성으로 젊었을 때 자주 가던 곳이다. 그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과 톰 포드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 마음 든든한 곳이기도 하다. 밀라노는 예전에 비해 패션계가 조금 쇠락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의 뇌리엔 콧대 높은 도시로 각인돼 있다. 세계적인 명품 숍들이 한 거리(Via Montenapoleone)에 빠짐없이 몰려 있어 쇼핑하기에 편리하다. 유난히 멋쟁이들이 많아서 거리를 지날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곳이다.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그런 도시들로 여행을 떠날 때 어떻게 짐을 꾸릴까? 여행가방 꾸리는데 늘 애를 먹는 사람들에게는 퍽 궁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한 벌로 여러 효과를 낼 수 있는 리버시블 아우터를 고르는 게 우선이죠. 아니면 3개 정도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바지는 스스로 질리지 않게 3벌쯤 넣고 고급 레스토랑 등에 갈 때를 대비해 질 좋은 블레이저 자켓을 한 벌 챙깁니다. 그다음 스카프나 머플러를 두어개 준비하면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 있죠. 저는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이너웨어를 넉넉히 넣습니다. 여행 전날엔 준비한 옷들을 다 입어보고 꼭 입을 옷들만 챙겨야 여행가방이 무겁지 않겠죠? 평상시 드는 가방은 크로스백으로 사용 가능한 것을 선택하는 게 맞습니다.”

해외 출장은 밥 먹듯 다니지만 패션계에서 소문난 워커홀릭으로 통하는 그는 정작 개인적인 휴가 한번 제대로 다녀온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절친인 김희애가 몇 년 전 그가 낸 책(ALL about STYLE)에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꼭 쉬라’는 추천사(?)를 써보냈을까?

그가 첫 개인 여행으로 제주 바닷가를 찾았던 것도 데뷔 6년만인 90년대 말이라고 하니, 패션스타일리스트로 살아온 그의 일상이 얼마나 숨 가빴을지 짐작이 간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여행자 정윤기

94년 광고 촬영의 스타일리스트로서 첫 일을 시작했던 그는 남다른 센스와 노력으로 빠르게 인정을 받았다. 인기 절정이던 가수 엄정화 등의 스타일링을 맡으며 차츰 연예게 인맥을 넓히기도 했다. 일을 함께 하는 스타들과는 아무리 친해도 반말을 하지않는 것으로 일의 각과 절도를 지켜낸 것이 그의 성공 비결이다. 

그러나 스타를 만드는 또 다른 스타인 그에게도 두려움은 일상이었다. 원래 내성적인 성격에다가 남이 안하는 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이름이 알려진 후부터는 ‘패션을 하려면 살부터 빼라’는 악플에 시달린 적도 많다. 패션 일의 특성상 명품을 즐겨 입는 그에게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따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옷을 사랑하고, 외골수처럼 일에 몰두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기에 당당히 설 수 있었노라 고백한다. 그의 노력은 젊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밀레니얼 세대는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에 대한 구분이 명확한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확실하게 주장하는 쪽이 일을 하는 데 편한 점이 있지요.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충고하죠. 좋아하는 일만 하는 사람에겐 많은 기회가 오지 않는다구요. 싫어하는 일도 해야 일을 빨리 익히고 성숙해지는 법이에요. 여기서 성숙은 ‘노땅’이 되라는 것이 아니고 프로가 되라는 의미예요.”

프로로서 후회 없이 일하고 잠시라도 기분 좋게 휴식하는 것이야말로 그를 매일 조금씩 풍요롭게 만드는 비결이다. 옷에 대한 감수성은 그런 정신의 풍요에서 오는 것이고. 럭셔리만 추구한다는 비평에 대해선 작고한 가브리엘 샤넬여사의 유명한 말을 덧붙인다. ‘럭셔리의 반대말은 빈곤이 아니다. 그것은 천박함의 반대말이다’라는. 실제로 그의 옷장엔 동대문에서 산 티셔츠, 점퍼 등이 의외로 많다는데, 홈쇼핑을 시작한 이유도 좋은 옷을 싸게 제공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이탈리아의 작지만 질 높은 공방들을 누비며 그가 직접 고른 옷들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동안 저는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외골수라 부르는 이유죠. 일 욕심은 아직도 많지만, 이젠 자연의 풀내음도 많이 느끼면서 일하고 싶어요! 그런 저에게 여행은 옷 다음으로 중요한 일이죠.”

최근 다녀온 강릉에서 ⓒ인트렌드
늦은 여름휴가를 겸해 친구들과 최근에 다녀온 강릉에서 ⓒ인트렌드

일에 미쳐 연애도 제대로 못해본 사람에게 여행은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법. 그는 요즘 국내여행이 주는 쏠쏠한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얼마전 친구들과 강릉 바닷가로 뒤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제주, 경주, 여수, 군산을 찍었다. ‘파란 하늘, 바다 풍경에 유난히 마음이 끌린다’는 그는 대한민국의 더 많은 아름다운 도시들을 두루 들러볼 계획이다. 예전엔 촬영만 마치면 곧바로 일터로 돌아오곤 했는데, 촬영 틈틈이 현지 풍광을 즐기게 된 것이 나이 들어 생긴 삶의 여유이자 변화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고 했던 그도 어쩔 수 없이 철이 든 걸까? 곰돌이 푸처럼 귀엽기만 하던 소년이 어느새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그건 패션에 대한 ‘감’이 떨어질까봐 두려웠던 거죠. 패션은 모험이고 때론 파괴이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감수성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패션의 그 ‘감’도 꾸준한 노력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많이 보고, 많이 입어보는 것이 좋은 스타일을 완성하는 비결이에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몸과 취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레드카펫 위의 여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건 멋진 옷이 아니라 누가 뭐라고 하든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는 용기니까요.”

‘감’도 노력에서 온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최초의 남자 스타일리스트가 최고의 패션 인플루언서가 되기까지 감내했어야 할 편견과 고통이야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터, 이제는 그 책 속에 자연 속 힐링 같은 그만의 소소한 여행담이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바래본다.

 

 
이형옥 대표와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전재호
이형옥 대표와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전재호

이형옥

<주부생활> 기자, <우먼센스> 편집국장을 거쳐 더북컴퍼니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싱글즈>를 창간했다. 이후 하나투어와 함께 만든 여행 콘텐츠 회사 하나티앤미디어의 대표로 재직하며 글로벌 감성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를 창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국내 유일의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의 편집 고문을 함께 역임하며 국내외 여행, 음악, 미술, 공연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 제작에 앞장 서고 있다.

 


관련기사

당신만 안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