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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상의 상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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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이상의 상주 여행
  • 이지혜 기자
  • 승인 2019.10.31 0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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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가까운 상주에서 가을 여행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낀 축복받은 땅

상주에 간다고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이 반문했다. 거기 뭐가 있기에? 강과 산을 넓게 낀 풍요의 땅. 상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일찍 출발 안 하셔도 됩니다.” 몇 번을 이야기하던 상주 시청 관광과 직원의 말이 상주에 도착할 때나 돼서야 이해됐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이면 도달하는 경상도가 있다는 말을, 지도 앱을 아무리 돌려봐도 믿을 수 없어 아침 일찍 출발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시간에,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빨리 상주에 도착했다. 여섯 개 IC가 지나는 도시. 대한민국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상주는 생각보다 매우 가까웠다.

(c)전재호
풍족한 땅과 가능성의 도시 상주 ⓒ전재호

사실 상주에 대해서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는 것은 그저 곶감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것.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지나는 문경과 마주해 있는 것도 몰랐고, 상주시 낙동면 낙동리가 지금까지도 지명에 있을 만큼 낙동강의 기준이 되는 지점인지도 몰랐다. 영남 내륙에서 가장 오랜 유적이 발견되기도 한 역사 깊은 도시이자 서울의 두 배 면적에 단 10만 명이 거주하는 곳이라는 사실도 미처 몰랐다.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할 때 이곳에서 여정을 끝냈었죠.” 일행의 말을 듣고서야 자전거에 최적화된 도로와 자전거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서쪽으론 괴산과 보은, 옥천, 동쪽으론 예천과 의성, 아래로는 김천과 구미, 위로는 문경시를 끼고 자리한 커다란 땅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낙양의 동쪽으로 흐르는 강
문화관광해설사와의 만남은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앞에서 이뤄졌다.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한 규모의 큰 건물이었다. 해설사는 “상주가 생각보다 크죠”라며 마음을 읽은 듯 말했다. 담수 생물 전문 연구기관인 이곳은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국내 생물을 조사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한 장소다. 이를 이용해 산업적 발전을 꾀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을 위해 전시관을 함께 운영한다. 환경부 산하기관으로 전시와 연구를 같이 하는 공간인 만큼 표본 제작실을 만들어 연구 기능을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관광도 관광이지만 연구와 관련된 콘텐츠를 한눈에 볼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큰 매력을 어필하는 곳. 현재 국내에서 담수 생물 표본을 연구하는 곳은 상주와 인천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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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낙동강 생물 자원관 ⓒ전재호

입구에서부터 다이내믹하게 전시한 낙동강 호랑이와 고라니의 실물표본이 눈길을 뺏는다. 체험 학습실은 유아들이 만지며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동물의 먹이를 직접 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구와 한반도의 다양한 생물이 제1전시실에 고르게 분포돼있다. 2015년 개관한 이곳에는 5800여 점의 동식물 표본이 박제되어 있어 그 어떤 동물원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라니와 노루의 차이를 아세요? 수컷 고라니는 송곳니가 나와 있고 노루는 머리에 뿔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 동물은 무엇일까요?” 흥미진진한 안내자의 동물 이야기가 이어진다. 동물 다큐멘터리를 끼고 사는 나는 치타와 표범 그리고 재규어를 구별하며 견학 온 아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천장에 있는 이 커다란 상어 역시 국내에서 잡힌 백상아리의 실물 표본이죠. 주변의 물고기는 물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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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상주 풍경 ⓒ전재호

별천지 같은 제1전시실을 지나면 낙동강의 환경과 생물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제2전시실이 나타난다. 낙동강 유역의 다양한 조류와 어류, 식물 그리고 낙동강에서만 사는 물고기도 볼 수 있다. 독도 섬 생태계만을 따로 전시해놓았고 더 이상 볼 수 없는 멸종 조류도 실물과 가깝게 전시돼있다. 전시 온실을 지나 너른 잔디밭을 가로지르며 꽃이 만발한 산책로를 여유 있게 걸었다. 3만 8천 평 규모의 생물자원관을 상주에서 처음 가는 곳으로 정한다면 장담컨대 그동안 상상했던 이 도시의 규모와 잠재력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온종일 이곳에서 신비로운 동물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낙동강의 전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경천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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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바라 볼 수 있는 고즈넉한 무우정의 풍경 ⓒ전재호

상주는 과거 낙상 또는 낙양이라고 불렀다. 낙동강은 이 도시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낙동강에 애착이 많은 도시다. 낙동강 700리 표지석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천대는 낙동강 강바람 길의 일부 코스다. 여유롭게 산책하며 드라마 세트장이나 과거 약을 짓던 약분, 돌을 파내 만든 세숫대야 등이 남아있는 유적지, 출렁다리와 조각공원을 돌아볼 수 있다. 경천대에 도착하니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늘을 받는다는 뜻의 경천대의 원래 이름은 ‘자천대(自天臺)’로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는 의미를 가졌어요. 병자호란 후 청나라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잡아갔을 때 함께 따라가셨던 우담 채득기 선생이 훗날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며 학문을 닦은 곳이죠. 이곳 ‘무우정’은 우담 채득기 선생이 마음을 다스린 정자고요.”

무우정에 앉아 유유히 움직이는 낙동강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멈춘 듯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강과 나 사이에 한 그루 소나무가 길게 목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던 그 옛날, 이곳에 퇴적암 중에서도 역암이 지각운동으로 솟구쳐 올랐는데 그 사이로 소나무 두 그루가 자랐더랬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자랐던 소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몇 년 전에 상해버렸는데, 남은 한 그루도 얼마 전부터 명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해설사는 사람들이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소나무를 살려보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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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 상주 ⓒ전재호

자리를 조금 옮겨 인공 섬인 경천섬을 바라보기 위해 학 전망대로 올랐다. 경천섬은 7만 평을 공원화한 산책 코스로 춘천의 남이섬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더 한적하다. 자전거를 형상화해놓은 다리를 도보로 건너 접근 할 수 있다. 학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천섬은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낙동강의 한가운데 고요히 떠 있었다. 한갓지게 산책을 하거나 돗자리를 펴놓고 낮잠을 잔다면 그보다 여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주말에는 푸드트럭이 흥겨운 분위기를 더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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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섬인 경천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전재호

자연친화적 체험 도시
상주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상주 보 수상 레저 센터에서는 자전거 모양의 보트를 타거나 카누, 카약, 폰툰보트 등 많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체험 관광의 백미 중 하나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체험센터이다. 게임 ‘스페셜 포스’의 맵을 그대로 구현한 이곳에서는 근접 전투에 특화된 최신 GPR 시스템을 도입해 FPS(First-Person Shooter) 전투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최대 30명까지 체험할 수 있어 단체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에게 큰 인기이다. 7분에서 12분동안 익사이팅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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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액티비티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센터. ⓒ전재호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상주에서 체험한 가장 즐거운 것은 승마장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는 말을 보고만 있어도 하루를 금방 보낼 수 있다. 그런데 말에게 먹이까지 줄 수 있다니! 당근을 날름 받아 아그작 씹어 먹는 말의 입도 혀도 귀엽고 볼은 또 얼마나 부드럽던지. 당근이 들어간 비닐백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말들이 소리를 내거나 앞발로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공평하게 나눠주고 싶었지만 워낙 큰 마방에서 56마리의 말들에게 당근을 주기란 힘든 일이었다. 이곳은 2010년에 준공한 자연친화적인 국제 승마장이다. 국제대회 규격에 맞는 설계와 시공으로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데 상주 세계 대학생 승마 선수권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말 산업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포니랜드, 실내승마장, 연습 마장, 주경기장, 경기운영, 마분장, 마사동, 체험장, 광장 등이 5만 3천 평에 넓게 포진돼있다. 국내 승마대회의 80% 정도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체험을 위해 주말에는 예약해야 할 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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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먹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국제 승마장 ⓒ전재호

말 먹이 체험이 끝나고 승마를 짧게 체험했다. 애플이라는 이름의 암말이 도도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안전 조끼와 헬멧을 쓰고 가이드의 안전 수칙에 따라 성큼 안장에 올라서니 부드러운 말갈기가 눈에 들어온다. 허리를 앞뒤로 조금씩 움직여가며 체험장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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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남서원에서 한적한 경천섬을 바라보았다. ⓒ전재호

하루를 마무리하는 길에 도남서원으로 잠시 들렀다. 여행에서 예정에 없던 장소는 지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가 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들이 힘을 모아 강당 등을 건립했다. 이후 2002년부터 이곳에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토지를 제외한 대부분이 재구성된 곳이라 실제 도남서원의 규모보다 두 배 정도 크게 만들어졌다. 이곳의 정자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경천섬은, 특히 해가 떨어지고 어스름한 땅거미가 지기 직전의 이곳은 경천대의 경치만큼 아름답고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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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 상징 감이 알맞게 잘 익었다. ⓒ전재호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보다
다음 날이 밝았다. 체험형 농촌 마을이 활성화된 상주에서 농촌 체험을 하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무엇보다 상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감 아닌가. 이곳에서 다니는 내내 감나무를 보았다. 가로수가 감나무로 된 곳이 상주 말고 있을까? 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중에서도 곶감 강정을 만들 수 있다는 구마이 곶감마을로 향했다. 삼한사온이 뚜렷한 내서 지역에 자리한 구마이 곶감마을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주민의 대부분이 감 생산에 종사한다. 감 따기부터 곶감 만들기, 강정 만들기 체험까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오토캠핑장과 숙박시설이 완비되어 있고 1박 2일 교육 프로그램도 구성되어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말린 곶감을 잘게 잘라 고르게 펼쳐놓고 그 위에 꿀과 버무린 잘 튀긴 쌀을 올린다. 다시 곶감을 올리고 비닐을 덮고 밀대로 밀어주면 끝. 달콤한 쌀과 담백한 감이 입에서 녹는다. 혀를 굴려 가며 단맛에 취하다 보니 이보다 더 좋은 간식거리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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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이 곶감마을에서 만든 곶감 강정 ⓒ전재호

또 다른 체험은 밤원마을이다. 밤원 마을에서 직접 기르고 수확한 유기농 쌀로 만든 누룩으로 누룩 소금을 만든다. 2~3일 발효한 누룩을 미리 갈아 통에 담아놓고 체험은 시작된다. 간수한 소금을 물에 녹여 누룩에 부어 저어주면 끝이다. 하지만 저어주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소금과 누룩과 물의 양은 1대 3대 4. 누룩 소금은 일반 소금 염도의 1/8로 매우 낮아 고혈압 환자에게 좋고 생선이나 고기 등 식자재를 부드럽게 만들고 잡내를 없애준다. 요구르트에 타서 먹거나 고기를 찍어 먹어도 매우 맛있다. 특유의 산미가 있고 짠맛 뒤에 단맛이 함께 느껴져 오묘한 맛이 난다. 만들어 놓은 누룩 소금에 날짜를 적었다. 2주간 이틀에 한 번씩 가스를 뺀다는 느낌으로 저어준 뒤 냉장 보관한 채 먹을 수 있다. 상주를 다녀온 지 채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틀에 한 번씩 열심히 누룩 소금을 저어가며 그곳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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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봉 자연 휴양림 ⓒ전재호

기대한 곳 중 하나이자 시청의 추천 코스였던 성주봉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산 하나를 통째로 깎은듯한 이곳은 성주 시청이 관리하는 곳으로 데크를 빌릴 수 있는 야영장, 수련관, 숙소인 산림의 집, 계곡을 이용해 만든 수영장, 산림 휴양관, 힐링 데크, 황톳길, 소나무 분재원, 자연암석원 등의 힐링센터가 자리했다. 끝이 아니다. 한방 주택 단지와 이벤트 광장, 한방 사우나, 상주 목재 문화 체험장, 양초동산, 건강공원, 지천옻칠아트센터, 황토펜션 등 한방산업단지까지 들어와 있는 114만 평 규모의 대규모 힐링 센터이다. 신발을 벗고 황톳길을 걷다가 소나무 분재원과 억새밭에서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한방사우나에서 몸을 녹인다면 완벽한 마무리가 될 텐데. 동서울과 이곳을 오가는 직통버스가 하루 세 번 왕복한다. 소요 시간은 단 세 시간. 언제든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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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반송이 무척 신성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전재호

“잠깐 시간이 나는데 상현리에 있는 반송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너무 아름답고 고풍스러워 쉬어가기 좋습니다.” 해설사의 추천에 고민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소나무와 비슷하지만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반송의 나이는 500년으로 추정된다. 추정 나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신성한 나무다. 이곳의 사람들 역시 반송을 귀하게 여겨 낙엽만 긁어가도 천벌을 받는다고 믿었다. 반송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소원을 빌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만져진 솔잎은 500년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기운이 돌아, 나무가 보고 겪어온 세월이 상상돼 숙연해졌다. 오랜 시간의 땅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도시 상주에서의 마지막 느낌으로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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