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3-11-20 10:15 (월)
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 ⑦ 건축가 승효상, 제2편 여행은 건축의 미래다
상태바
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 ⑦ 건축가 승효상, 제2편 여행은 건축의 미래다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19.11.29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걸작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이 사유하고 보러 다니는 것이야말로 삶의 필수 과제라 말하는 승효상. 하여 그의 여행은 단순히 시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나이테를 헤집는 뜻 깊은 시간 여행이 되고 나아가 우리 건축의 미래가 되어 왔다. 건축가의 여행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거름으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미황사 대웅전 앞에서 ⓒ승효상
미황사 대웅전 앞에서 ⓒ승효상

1 여행자에서 여행가로

인터뷰 전 그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승효상의 건축인생에 큰 영향을 준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1870~1933)를 알게 되었다. “건축에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그는 화려한 장식이 유행하던 당시의 견고한 관습을 과감히 깨고 빈 시내에 새로운 건물을 세움으로써 모더니즘 시대를 열었다. 빈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과 왕궁 근처인 그 건물은 주변의 고색창연한 바로크풍 건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매우 밋밋한 외관을 하고 있어 지금도 많은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다. 승효상은 그를 연구하면서 건축이 시대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같은 맥락에서 건축가는 예술가라기보다 지식인에 가깝다고 믿는 그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도구로서 건축 외에 글 쓰는 일과 강의를 지속해왔다.

5년 전부터는 ‘동숭학당’이라 이름 붙인 강좌를 개설해 건축과 인문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숭동에 자리한 그의 사무실 지하에서 이뤄지는 이 과정에는 화가, 소설가, 목수, 디자이너, 언론인,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 다투어 찾아온다. 학기가 끝날 즈음엔 희망자들을 모아 매년 여름, 테마가 있는 여행을 기획해 다녀오곤 했다.

첫 학기엔 ‘거주’라는 테마로 죽은 자들의 거주지인 묘지를 주로 둘러봤고, 두 번째 학기엔 ‘기억’이란 테마로 신화의 탄생지인 그리스 크레타섬과 에게해 일대를 탐사했다. ‘문화’가 주제였던 해에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공간’을 주제로 한 2018년에는 침묵과 영성을 느끼게 하는 유럽 일대의 수도원과 성당을 돌아봤다. ‘동숭학당’의 마지막 학기였던 올여름엔 ‘사회’란 키워드로 모더니즘의 발상지인 사라예보를 비롯해 동유럽 여러 나라를 거쳐 베를린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매년 꽤 많은 숫자의 희망자가 몰렸음은 물론이다. 소설가 공지영이 두 번 동행했고, 아나운서 윤영미는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손수 일정표를 짠 테마여행이니 그럴 수밖에. 여행사의 일방적인 패키지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을 것 같다.

2017년 수도원여행 클뤼니수도원에서 ⓒ승효상
2018년 '동숭학당'의 유럽 수도원 여행 중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클뤼니 수도원에서 ⓒ승효상

“아무래도 내가 여러 번 가봤던 곳들이고 건축가로서의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지니 일반 관광객 시선으론 잘 안 보이던 것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현지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호텔, 음식을 추천받을 수 있고 현지 사람들과의 다양한 만남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20명 이상이 함께 가는 단체여행인데도 개별적인 느낌이 나도록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비결이다. 이를테면 좋은 식당에 그렇게 많은 인원을 예약하기는 힘드니까 3~4명씩 조별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여행 전에 미리 공부를 하고 자료도 나눠주기 때문에 알아서들 잘 찾아온다. 단,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편리한 숙박, 교통편은 공유한다.”

도시를 투어할 경우엔 무조건 시내 중심에 있는 부티크 호텔을 선정하는 것이 원칙. 규모가 크지 않아야 그들만의 오붓한 느낌과 토론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승효상의 여행 일정표

총 5번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년에 다녀온 유럽 수도원과 성당 기행. 26명의 참가자들과 열흘간 2,500km를 달리며 여러 나라를 넘나들어야 했던 힘든 여정이었다. 오래 전부터 수도원이 가진 빛과 침묵의 공간에 매료되었던 그로서는 성스러움의 근원인 장소들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또 '익숙한 장소들인 그곳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면 오랜 불면의 밤들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있었다고 한다. 로마 근교 수비아코 절벽 위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시작된 그 여정은 지어진 연도 순을 따라 스위스 생 갈렌과 롱샹 성당, 프랑스 남부의 르 토로네, 클뤼니, 라 투레트 수도원 등을 거쳐, 파리의 생 마들렌 성당까지 이어졌다.

“수도원은 당시 수도사들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지었기 때문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다.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건축양식을 하고 있지만 경계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한 사람들(수도사)만이 가지는 내적인 성숙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은 공통된 분위기다. 특히 르 코르비쥐에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은 수도원 특유의 영적인 공간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젊은 시절, 내가 몇 번이나 둘러보고 필사한 곳이기도 하다."

승효상은 1991년 여름, 처음 라 투레트 수도원을 방문했다. 리옹 근처의 작은 마을 라브렐의 비탈진 언덕 위였다. 모더니즘 양식에 따라 단순한 외관을 한 수도원은 내부에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온통 암흑 뿐인 공간은 무한으로 느껴졌고, 무엇보다 그 어둠을 뚫고 비수처럼 들어온 빛이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 다른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경이로웠다. 본당으로 가는 복도 끝에 서면 리드미컬한 창살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가 바닥에 음표처럼 펼쳐쳤고 빨간색, 초록색, 크롬빛을 한 천정을 통과한 빛들은 저마다 화려한 향연을 펼치고 있었다. 빛이 그렇게 암흑의 공간을 농락하는 풍경을 보면서 그는 심장이 멎을듯한 충격에 빠졌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더구나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숭고한 삶과 희생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침묵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라 투레트 수도원은 화가 임옥상이 15년 전 그의 주선으로 뒤늦은 결혼식을 올린 곳이고, 작년 여름 소설가 공지영이 펑펑 눈물을 쏟았을만큼 깊은 감동을 주는 곳이다.

수도원 여행의 백미는 그런 유서깊은 장소에서 보내는 하룻밤. 주위에 숲과 고요 뿐인 그 공간이 침묵을 통해 더 많은 말들을 들려주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 경우도 과연 수도원 숙박이 가능할까?

“수도원 중에는 건물만 있고 본래의 기능은 사라진 곳이 많다. 그러나 견학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다. 물론 저녁 5시 전에는 들어가야 한다는 약간의 제약이 있긴 하지만 저녁 식사 때 와인 반병을 제공하는 등 융통성 있게 운영되는 편이다. 그런 곳에서 소박한 음식에 와인까지 마신 후 하룻밤 편히 자고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 여행을 바탕으로 올여름에 펴낸 승효상의 책 ‘묵상’의 한귀절을 인용하면 ‘처음엔 낯설어하던 사람들도 수도원 기행을 마치고 나면 얼굴에 광채가 나더라’는 것. 수도원에서의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그만큼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행은 그렇게 낯선 시간을 헤매며, 색다른 경험을 통해 감춰둔 나 자신과 드디어 조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이 빛바랜 역사 속을 거닐며 현재의 삶을 실감나게 하는 것이라면 더 큰 의미가 있다. 

“역사라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살아서 만든 흔적이다. 보통 지구의 역사를 36억년이라 보는데, 그중 인간이 만든 역사는 길게 잡아봐야 360만년에서 90만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보존이 잘 된 건축들이 서양에 많다는 것이 그쪽 지역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다. 물론 인간의 흔적이 없어도 오래된 땅을 보면 느끼는 감동이 있다. 험준한 산이라거나 계곡 등은 다 ‘터무늬’(땅의 무늬)가 다르니까. 하지만 그런 곳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기엔 인간의 삶에 주어진 시간적 한계가 있으므로 우선 흥미를 끄는 곳,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좇는 일부터 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그는 남미의 페레즈 유적, 앙코르와트 등의 원시림과 사원 등을 보러 간 적도 있었는데, 일반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대 도시의 잘 닦여진 도로, 고대인들의 영성이 담긴 유적들을 보며 감탄한 적도 많았다고 덧붙인다.

아무리 그래도 베테랑 가이드가 아닌 건축가가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인솔한다는 건 상상이 잘 안 된다. 그것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즐기지 않는다면 그저 곤혹스런 업무가 될 뿐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여행은 혼자 가는 게 제일 좋다. 그래야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철저히 객관화시킬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혼자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 두 명이 갈 경우 어쩌다 싸움이라도 나면 그야말로 비극이다. 셋은 방 잡기가 애매하고 한 사람이 ‘왕따’가 될 확률도 높다. 넷은 둘로 패가 갈려 싸우기 십상이고, 다섯은 레스토랑에 함께 앉기 불편할 뿐더러 택시 잡기가 힘들다. 꼭 여럿이 가야 한다면 여섯 명이 제일 좋다. 방 잡기도 좋고 9인승 벤을 빌려 이동하기도 편리하니까. 무엇보다 여섯은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식탁에 앉아 균형 잡힌 토론을 벌이기에도 좋은 숫자다. 그 이상 가면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훈련이지.(웃음)”

승효상이 안내하는 여행은 대개 남자 10~ 12명, 여자 12~ 14명 정도로 인원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험상 여자 숫자가 조금 더 많아야 분위기가 산단다. 매년 초 동숭학당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모집을 실시하는데, 다들 친구들, 지인들을 데려오기 때문에 인원이 많아도 늘 화기애애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궁금해졌다. 건축가의 여행가방 속엔 언제나 줄자가 있을까. 그가 가방 꾸릴 때 빼놓지 않고 꼭 챙겨 넣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전에는 책도 많이 넣고 사진 찍는 렌즈도 종류별로 다 챙기곤 했는데(망원렌즈, PC렌즈 등) 이제 웬만큼 경험이 쌓여 그런지 눈으로 한번 보면 대충 사이즈가 나온다. 가기 전에 지도를 쓱 한번 보고 나면 그 도시의 공간이 대충 어떨지 감이 오더라. 그리고 요샌 스마트폰이 열일을 하니까 특별히 챙겨 넣는 건 없다. 마음 맞는 선후배 건축가들과 함께 여행가는 경우에는 서로들 느낀 감상,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엄청난 지식을 쌓을 수 있어 다른 도구는 별 필요가 없다.”

한때 그와 함께 ‘이로재’ 사무소를 운영했던 건축가 민현식과 김수근 사후(1986년) 뜻을 같이 했던 젊은 건축가들의 스터디 모임(4.3그룹) 멤버들이 그의 오랜 동료이자 여행 동반자들이다. 그들과의 동반 여행은 각자 다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단다.

이로재에서 건축가 승효상 ⓒ전재호
책과 설계모형, 음악으로 가득찬 이로재 사무실에서, 건축가 승효상 ⓒ김병윤

3 여행은 건축의 미래다

건축은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타인까지 더불어 즐길 수 있을 때 의미 있는 것이기에 건축가는 늘 공공의 가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승효상. 그렇다면 도시의 풍경도, 그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의 지위도 당연히 바뀔 수 있을 터, 세계적인 추세는 어떠한지 물었다.

“말 그대로 전 세계 곳곳에서 도시 재생이 유행이다. 2차 대전 후 잿더미가 된 도시들에 새 건물을 세운 지 벌써 60~7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낡은 그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 짓기 보다는 옛날 기억에 덧대어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는 추세고 나도 그 방법이 맞다고 본다. 예를 들면 예전에 대규모로 지었던 항만시설-스웨덴의 말뫼,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뒤셀도르프항구, 영국 리버풀 항구 등의 낡은 보세 창고, 하역장 등에 새로운 디자인을 덧입히는 식이다. 그런 장소들이 새로운 랜드마크로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랜드마크는 그저 파편적인 개념일 뿐이고, 그 안에 네트워킹을 만들어야 비로소 공동체가 활성화된다는 점에서 건물 하나에 집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떨까? 몇 년 전 동대문에 세워진 DDP 건물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한마디로 비극이다. 우리 역사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인 건축가들 중에 국적불명의 건물들을 짓는 경우가 있다. 사실 서울은 산세가 워낙 아름다워 별다른 랜드마크가 필요 없는 도시다. 역사적인 건축이나 오래된 풍경을 보완해 짓는 것이 아름답고도 독특한 서울 풍경을 만드는 비결이다.”

그런 그에게 서울 외에 가장 살고 싶은 세계의 도시가 어디인지 물었더니, ‘빈’이란다. 합스부르크왕가의 오랜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질 좋은 교육과 문화 향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빈은 또 오래된 건물들을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 현대적인 디자인을 눈에 띄지 않게 덧입혀 신구의 매력을 비교할 수 있게 만든 것이 건축가의 눈을 매료시킨다.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수돗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고 알프스 근처인 환경의 이점 등으로 삶의 질이 최고로 높은 도시로 10년째 선정된 곳이다. 2차대전 후 현대 건축의 전시장이 되다시피한 베를린은 근처에 산이 없어서 걷는 재미가 덜하단다. 지난 여름, 마침 빈에 다녀온 나는 시내에 무수히 널린 개성만점의 그곳 커피숍 풍경이 떠올랐다. 밤새워 일하는 건축가와 커피, 어쩐지 어울리는 풍경이다.

“나는 원샷하기 좋은 에스프레소 커피만 마시기에 다양한 카페 경험은 적다. 그래도 비엔나커피가 워낙 유명하고 커피숍 인테리어도 우아해 구경거리론 근사했는데, 요즘은 빈에도 스타벅스가 하나 둘 늘어가는 추세라 매우 섭섭하더라.”

미술, 음악은 물론 다양한 예술 애호가로도 유명한 그는 실제로 공연을 보러 많은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집과 사무실 곳곳에 책을 비치해두고 닥치는 대로 읽는 다독가인 동시에 글 짓는 솜씨 또한 전업작가 못지않다는 평가(문화비평가 유홍준의 말)를 받고 있다.

그런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가장 자극한 여행지는 소설 ‘폭풍의 언덕’의 배경지인 바로 그곳, 잉글랜드 웨스트 요크셔 지역의 하워스 마을이다. 황무지인 그 땅을 휩쓰는 거센 바람과 억새풀 흔들리는 광경을 보면서 마치 소설 속 주인공 히스클리프가 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국내외 안 가본 곳이 드문 그가 가까운 시일 내에 꼭 방문하고픈 곳은 쿠바. 이민족과 원주민이 얽혀 만들어낸 오랜 역사의 이질성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념과 사상 갈등으로 혁명이 벌어진 곳이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간다고. 어느 도시건 역사는 반드시 건축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 현장을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지구의 나이테를 찾아 떠나는 여행 외에 스스로를 조탁하고 치유하기 위한 내면의 여행은 어떨까. 그 깊은 심연 속 인생 여행의 가이드는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그는 다소 멋적은 웃음을 날리며 스승 김수근이 들려준 평생의 조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돈과 여자는 쫓아다니지 말라‘는 것. 건축 인생의 첫 가이드이기도 했던 김수근의 가르침대로 그는 ’돈 없이도 행복하게 지내는 여러 방법들을 많이 계발해놓았다'고 덧붙인다. 진짜 그런 방법들이 있나?

“가치관만 바로 서 있으면 된다. 올해 서울의 경제지수는 세계 6위라고 하는데, 삶의 질 지수는 76위로 떨어진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돈 잘 버는 게 곧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잘못 가르쳐온 탓이다. 지금이라도 국가가 나서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우리 가치관이 올바르게 바뀌어야 더 이상 부동산에 매달리지 않고 좋은 건축,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길도 나오지 않을까.”

건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사회와 국가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는 그는 내년쯤 모든 공적인 임무에서 물러난 후 마지막 걸작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금 내 나이가 다시 설계를 시작할 때다.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다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이 나이쯤에 걸작들을 남겼다. 환경적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건축이든 파괴일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산 흔적을 다음 세대에 연장시킨다는 점에서 옛것의 기억을 보전하고, 현명하게 고쳐 쓰는 방법도 함께 강구하고 있다. 거기다 공공의 가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축이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건축가의 최종 목표는 행복 전도사인 셈이다.”

그러려면 더 많이 사유하고 많이 보러 다니는 것이야말로 필수라고 말하는 그는 인터뷰 이틀 후에도 빈으로 날아갈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가훈장 수여 후 그곳에서 다양한 세미나가 열리기 때문이다. 건축가로 사는 한, 그는 아마도 영원히 지구를 떠도는 여행자일 터. 그러나 그의 여행은 단순히 장소나 공간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인류가 남긴 수없이 많은 역사를 헤집는 시간 여행일 것임이 분명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인물로 꼽힌다. 옛 한옥의 정취를 담은 수졸당(1993) 저택과 여러 개의 마당이 건물과 담에 의해 나눠져 독특한 공간을 이룬 수백당(1998), 웰컴시티(2000) 등으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고,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직함 또한 화려하고 굵직하다. 6년 전부터는 서울특별시 총괄건축가(2014~2016), 제 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2018~ )을 맡아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 걷기 좋은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있다.


 

건축가 승효상과 이형옥 대표 ⓒ김병윤

 

이형옥

<주부생활> 기자, <우먼센스> 편집국장을 거쳐 더북컴퍼니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싱글즈>를 창간했다. 이후 하나투어와 함께 만든 여행 콘텐츠 회사 하나티앤미디어의 대표로 재직하며 글로벌 감성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를 창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국내 유일의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의 편집 고문을 함께 역임하며 국내외 여행, 음악, 미술, 공연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 제작에 앞장 서고 있다.


관련기사

당신만 안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