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도시 터키 샨르우르파&아디야만

터키 남동부의 괴베클리 테페, 넴루트 터키 남동부가 품은 고대의 시간

2019-12-10     이지혜 기자

과거로 떠나는 여행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두 시간을 날아 터키 남동부에 자리한 샨르우르파Şanlıurfa 공항에 착륙하기 전까지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사막처럼 메마른 땅이 사실 비옥하기로 유명한 토지였다는 것을 몰랐다. 이 비옥한 땅에는 현존하는 유적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괴베클리 테페Göbeklitepe 그리고 아브라함이 탄생하고 묻힌 무덤이 존재한다. 성스러운 예언자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샨르우르파 그리고 산 꼭대기에 세워진 왕실의 묘 넴루트를 품은 아디야만을 가기 위해 터키 남동부에 발을 내딛었다.

터키

한국에서 괴베클리 테페라는 유적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샨르우르파라는 지명만큼 낯설었다. 하지만 검색 몇 번만으로 기대감은 높아졌다. 원시시대에 지어진 초고대문명의 건물이라니. 지구의 리셋설에 근거를 실어주는 곳으로의 여행이었다. 샨르우르파에 도착 직후 첫 일정이 괴베클리 테페라는 사실은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두근거림으로 쉽게 바뀌어주었다. 괴베클리 테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추정되며 전 세계 역사학을 들썩이게 한 건축물이다.

1963년 처음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는 샨르우르파 시에서 북동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다. 학자들은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진 시기를 놀랍게도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전 시대인 1만 1000년 전 전으로 추정한다. 이는 스톤헨지나 피라미드보다 최소 6000년 앞서는 시대다. 이 시기는 겨우 원시적인 농업이 시작되려던 신석기 시대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인류가 이토록 거대한 유적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노동력, 그 전에 농경생활에 따른 사회적 계급과 종교가 존재해야 한다.

터키

괴베클리 테페는 존재 자체로 이러한 일반적인 학설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심지어 현재까지의 발굴 규모는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인데 아직 발굴되지 않은 부분이 탄소 측정기에 따르면 이들의 연대는 매머드가 활동하던 시대인 플라이스토세에 해당되는 1만 4000년 전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어떠한 문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무한한 발굴 가능성과 역사적인 무게에 유네스코는 지난 해 괴베클리 테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발굴을 주도했던 독일의 고고학자 슈미트 교수는 신전의 성격을 돌기둥의 동물 형상들이 수렵의 사냥감으로 묘사된 것이 아니라 신격화된 형상의 사자나 거미, 뱀, 전갈 등의 다양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이곳이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해 지어진 사원이기 보다는 죽은 자들을 보호하는 신들을 모시는 장소로 해석했다.

터키

지구의 역사를 뒤바꿀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땅에 서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비옥함을 숨긴 넓고 황망한 땅, 어느 낮은 산의 꼭대기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낯선 고대의 유적이 미래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한없이 궁금해졌다. 앞으로 최소 60년이 더 걸려야 나머지 유적이 발굴된다고 한다. 1만년이 넘는 시간동안 땅 속에서 몸을 숨기고 이제야 일부분만을 내어놓은 괴베클리 테페를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이 2019년의 어느 날이라는 현실이 우주의 점처럼 작게 느껴졌다.

터키

터키 남동부가 품은 시간

샨르우르파는 괴베클리 테페가 발견되기 전부터 예언자들의 성스러운 도시로 유명했다(얼마나 성스럽냐면 이 도시 대부분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 샨르우르파에는 성경과 이슬람의 경전 쿠란을 비롯해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경전인 토라에 언급된 성지들이 상당히 다양하다. 특히 거의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조상 아브라함과 관련이 깊다.

땅거미가 찾아오기 직전 사람들이 모여드는 연못을 찾았다. 규모가 큰 이 연못이 단순히 가족이나 연인이 자유롭게 쉬어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발륵르 골Balıklı Gol이라는 이름의 연못은 전설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화형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불은 물로, 장작이 물고기로 변하며 만들어졌다. 전통적으로 연못에 사는 물고기조차 성스러이 여겨 절대 잡지 않는데,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잡아먹을 경우 큰 불행이 닥친다고 믿는다.

터키

현지인들이 쉼터처럼 드나드는 이 아담한 연못과 이어진 공원에는 아브라함의 무덤을 모신 성스러운 사원이 있고 시내 중심부 가까이에는 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동굴도 존재한다. 이 동굴 근처의 이슬람 사원은 이슬람교의 성지로서 무슬림들을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기독교인, 유대교인들이 찾는다. 기독교에서 179년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서 공인된 최초의 도시 에데사를 이곳 샨르우르파로 보고 있다. 샨르우르파가 ‘예언자들의 고향’이라 불리며 하란과 더불어 3대 종교인들의 성지순례 명소로 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터키

샨르우르파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아디야만Adıyaman으로 떠났다. 신들의 산으로 불리는 넴루트 산 국립공원Nemrut Mountain National Park or Nemrut Dağ을 오르기 위해서다. 새벽부터 오르기 시작해 일출 시간에 맞춰 꼭대기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탄성을 막을 수 없었다. 거대한 바위로 만든 수많은 조각상이 황망한 산꼭대기에 압도적으로 세워져있었다.

터키

이곳은 기원전 1세기 경, 유프라테스 유역과 시리아 북쪽에 건설된 콤마게네Commagene 왕국을 다스린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이다. 안티오쿠스는 넴루트 정상의 동쪽과 서쪽에 거대한 테라스를 만들어 성소를 설치하며 그를 스스로 신격화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신화 속 신들 사이에 그의 석상이 함께 자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진으로 인해 얼굴과 몸이 분리된 채 신과 나란히 앉아 있는 안티오쿠스는 결국 신이 되지 못한 채 왕국의 짧은 역사와 함께 사라졌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왕의 뜨거운 욕망이 느껴지는 듯 두려움이 밀려왔다.

터키

터키 남동부에서 1만 년이 넘게 숨겨져 있던 신전부터 1세기 때 지어진 욕망의 무덤, 그리고 모든 종교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인물이 살아 숨 쉬던 도시를 탐험했다. 시간이 선물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완벽한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시계나 달력은 아무 힘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