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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21세기 난쏘공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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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21세기 난쏘공의 꿈
  • 이장숙(프리랜서 에디터)
  • 승인 2022.03.16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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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의 시대, 불안과 절망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목 차

자연사박물관

크라운 공장 노동자 가족

인생 이야기

노블카운티

고흐의 빛

재이(在以)

카티클란-온 마을이 빛으로 연결된

 

내 소설 읽기의 이력은 텔레포트 하듯 어느 순간 뚝 끊겼고, 이젠 문단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서점 판매대 위의 책 제목도, 작가도 모두 '뭐지? 누구지?' 싶어지는 요즘이다. 문학의 경향도 많이 바뀌어서 요즘은 젊은 작가들의 SF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소설은 신변잡기적이거나, 흐물거리는 감정의 늪을 허우적거리거나, 사회와 역사에 압도된 어두운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 단계를 뛰어 넘은 느낌이다. 젊은 작가들은 밝다. 거침이 없고 도전적이다. 그렇다고 또 가볍지만도 않다. 그들의 젊음이, 당참이, 무한함이 부럽다 느끼고 있을 때, '자연사박물관'을 만났다. ​

책 읽기 내공이 깊은 선생님께서 2021년에 읽은 책 가운데 손꼽는 세 권 중 하나라며 '자연사박물관'을 추천하셨다. '21세기의 '난쏘공'이란 극찬을 곁들여서.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 책 읽기로 소일을 삼곤 했는데, 그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소설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난장이 가족의 절망과 슬픔, 소외된 삶, 사회의 구조적 모순 등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난장이 가족의 비극을 입체 퍼즐 맞추듯 이쪽 면에서, 또 저쪽 면에서 아귀 맞춤하면서 '1970년대 이런 대단한 소설이 있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소설에 비견할 만한 작품이라니, 어찌 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책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기 위해 책 구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지만 과감히 룰을 깼다. 책은 주문한 바로 다음 날 왔다.

그는 아내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이해나 사랑 따위는, 추운 겨울밤, 먹지도 못할 닭똥집을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철탑이나 고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상에서의 선택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

P31 '자연사박물관' 중

낯선 도시, 자연사박물관의 긴 통로를 따라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공룡 모형과 새들의 박제와 알을 깨고 막 부화하는 순간 용암에 갇혀 버린 어떤 생물체의 화석도 그들 곁을 지나갔다. ……그가 먼 허공에 정지된 채 매달려 있는 동안 아내는 스스로 길을 찾고 속도를 올릴 수 있을까? 긴 통로의 끝에서 초록빛 유도등이 반짝였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P33 '자연사박물관' 중

처음엔 젊은 작가의 작품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젊은 작가와는 다른 결이 느껴졌다. 고궁 근처 아름다운 학교에 다니며 처음으로 시를 썼다는 이수경 작가는 그 이력을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왠지 나와 별 차이 없는 시대를 산 듯, 감정의 추이가 낯익다.

젊은 시절 노동 운동을 하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했다. 남편은 노조 일을 하며 회사의 부당함에 맞서고 있다. 남편의 삶은 밀리고 밀려, 지상의 삶도 허락받지 못한 채 철탑 위 백척간두로 쫓겨간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삶이 불안하다. 노조 사무장의 아내처럼 자신도 어느 순간 자취 없이 사라질 것만 같다. 아내는 외친다. “미안해, 함께 추락하기 싫어”라고. 아내의 절규가, 아내의 공포가 아프다!

‘섹스를 하기 전까지가 연애’고 ‘그 다음은 포르노’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사랑은 없다. 더 이상 남편과 섹스를 하지 않으며, 같은 공간에 눕지도 않는다. 아이를 양육하며 구멍난 살림을 돌려막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아내는 남편이 귀찮다. 아니 사실은 기대하지 않기 위해, 실망하지 않기 위해 늘 무심하다. 대부분의 시간 부재중인 남편이 가끔 집에 들를 때면, 그의 지정석은 주워온 소파 위다. 아내에게 남편은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빛바랜 소파 같은 존재다.

남보다 못한 듯한 부부 사이에서 아내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일한 때는 남편이 위기에 빠진 순간. 아내는 물불 가리지 않고 남편을 위협하는 대상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낸다. 그 공격성의 실체는 극도의 불안함이 더해진 생존본능. 잔혹의 시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공조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왜 자연사박물관인가다. 자연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은 사실 죽은 생물들의 역사관이 아니던가. 이제는 살아 숨쉬지 않는 존재들의 역사관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노동 운동이라는 어쩌면 지난 세기의 박물관에나 들어갈 가치를 우직하게 지키는 남편과 머릿니를 옮기는 가난한 동네의 여자가 된 아내의 삶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自然史처럼 박제되고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 마치 박물관에서 만난 뱀 앞의 쥐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목을 옥죄는 죽음이 自然死를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을, 인간의 잔혹사라는 것을.

남편 대신 운전대를 잡고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하는 아내 앞에서,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희극적인 현실 앞에서 남편은 읊조린다. ‘잔혹의 끝에서 새로운 삶이 생겨나는 거지’라고. 변증법적 현실 인식 속에 남편은 끝끝내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내 또한 이에 화답하듯 선언한다. “아직은 안 죽어!”

<자연사박물관>이란 연작소설집 속 프롤로그 격인 ‘자연사박물관’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자본주의시대 노동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처절한 생존기이자, 두려움을 딛고 끝내 소멸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우리들의 선전포고문이 아닐런지.

자연사박물관 표지 이미지
자연사박물관 북 커버

<자연사박물관> 이수경, 도서출판 강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자연사박물관'으로 등단한 이수경의 첫번째 소설집.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한 노동자 가족의 불안한 생존의 연대기다. 이 소설엔 대학 졸업 후 노동 현장에 투신한 운동권 학생의 후일담이 있고, 척박한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운동가의 투쟁이 있으며, 남편을 지지하면서도 가족의 안위와 생존을 걱정하며 막막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노동자 아내의 불안이 있다. 한때는 혁명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충직한 노예로서의 삶과 막막한 생계의 불안뿐이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은 끝끝내 소멸하지 않고 연대와 환대 속에서 다른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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