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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무스 3부작_ 그림책으로 구현한 禪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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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무스 3부작_ 그림책으로 구현한 禪의 세계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22.06.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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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을 위한 그림 동화

동양적 선의 세계에 관심이 많은 이 미국인 작가는 마이클, 애디, 칼 이렇게 세 아이의 시선으로 판다곰 '고요한물(스틸워터)'이 들려주는 이야기 세계를 그려낸다. <달을 줄 걸 그랬어>, <누가 진짜일까>, <설탕 한 컵>.

 

1. 달을 줄 걸 그랬어

그 첫 시작은 <달을 줄 것 그랬어>. 이 그림책에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우화 세 편이 실려 있다.

밤손님에게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물건인 낡아빠진 옷을 벗어 주고는 빛나는 달빛 아래서 '저 아름다운 달을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안타까워 하는 이야기가 하나. 전화위복을 뜻하는 '새옹지마'의 고사가 둘. 힘들게 업어서 물웅덩이를 건너게 해줬는데도 한 마디 인사 없이 가버린 아가씨의 무례함에 화를 내는 젊은 스님과 노스님의 선문답이 셋. "나는 벌써 몇 시간 전에 그 여인을 내려놓았네만, 자넨 왜 아직도 업고 있단 말인가?"라는 노승의 언어는 죽비로 어깨를 내려치는 것 같은 경책이다. 고요한물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비추어 보고, 합장하는 마음이 되는 것! 이 마음의 경지가 선의 세계의 미덕이다.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언어를 추구하는 미국인에게 마음의 자리를 화두로 삼는 명상과 선의 세계는 매혹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작가 존 무스는 그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를 자신의 아이와 우리에게 선물한다. '나의 마음을 훔친 이와 어떤 것을 나눌 것인가, 행과 불행을 대하는 방식, 두려움과 마주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 등에 대한 낯익은 접근법이 반갑다.

 ​부처의 명상법은, 깨어 있으되 아주 고요히 앉아 그 어떤 생각도 붙잡지 않고, 한 가지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웅덩이의 물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물이 고요하면 물에 비친 달도 보입니다. 그러나 물이 흔들리면 따라서 달도 일그러지고 흔들리기 마련이지요. 진정한 달을 보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진정한 세상을 볼 수가 없는 법이니까요.

출처: <달을 줄걸 그랬어> 작가의 말 중  

 

2. 누가 진짜일까?

<누가 진짜일까?> 또한 액자형 구성으로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때는 유령과 괴물,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운 핼로윈 데이, 고요한물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인공은 센조와 오추. 어릴 적부터 사랑을 키워오던 두 사람은 가난 때문에 서로 헤어질 운명에 처하게 되지만 결국 사랑의 도피를 선택한다. 도망가서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둘은 현실과 부딪쳐보기로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고향집에서 마주한 것은 병 들어 있는 또 다른 센조. 두 센조는 서로를 바라보다 하나가 되었다는 이야기 끝에 이어지는 질문 하나. "어느 센조가 진짜일까? 그들은 두 사람일까, 한 사람일까?".

사물의 이쪽과 저쪽이 있듯이 사람 또한 다양한 마음의 구비를 갖고 산다. 보여지는 마음과 보이지 않는(숨겨진) 마음, 이 사람에게 보여지는 마음과 저 사람에게 보여지는 마음, 내가 알아챈 마음과 알아채지 못한 마음, 본래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 등.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을 의식과 무의식이라고도 하고, 페르소나(가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페르소나는 다분히 가면을 쓴 인격의 의미로 해석되곤 해서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페르소나는 기본 장착 아이템이다.

내면을 고요히 응시하다 보면 하늘의 달과 수면에 비친 달처럼 똑닮았지만 실제가 아닌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수면에 비친 달을 보며 우리가 달을 인식하고 달에 대한 생각과 마음을 쌓아가기에, 수면 위의 비친 달이 달이 아닌 것은 아니다. 같은 선상에서 실제가 아닌 것 같은 나 또한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라깡의 말을 빌자면 무수히 연결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므로. 언어를 매개로 연결된 인간은 애초부터 타자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다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진짜 나인지, 가짜 나인지(본래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를 알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존 무스의 말마따나 잔물결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심연으로의 침잠이 필요하다. 나를 가리는 안개를 걷어내야만 두 나와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어서 둘인 동시에 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니 둘인가, 하나인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둘의 본질을 인식하고만 있다면, 둘은 영원히 미끄러져 분열되지 않고 언제든 하나로 만나 화해하고 공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한 또 다른 전제조건은 '나의 세계 안에 갇혀 있지 말 것, 스스로에게 허용적이 될 것'. 나와 세계가 연결돼 있어야만이 내 안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으며, 스스로에게 허용적이 될 때 나를 둘러싼 세계에도 허용적일 수 있다(엄격한 이들에게 이 부분은 쉽지 않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참선의 주된 화두가 참나의 발견이라는 점을 두고 볼 때, 이 이야기는 선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3. 설탕 한 컵

함께 있으면 세상이 환해질만큼 사랑스럽던 친구(애묘) 트럼펫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애디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고요한물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고요한물은 애디에게 빈 컵을 내밀며 '아무도 죽지 않은 집에서 설탕을 가득 채워 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을 어디에도 죽음이 깃들지 않은 집은 없었다. 애디는 때때로 죽음과 마주한 마을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까지 한다. 애디는 마을을 누비며 자신의 몸 곳곳에 각인된 트럼펫의 촉감을, 트렘펫과의 추억을 되새긴다. 비로소 트렘펫의 죽음을 받아들인 애디는 눈물을 흘린다.

빈 손으로 돌아간 애디는 고요한물에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요한물은 애디를 꼭 안아주며 답한다. "트럼펫을 생각하면 늘 슬플지도 몰라. 그래도 시간이 아픔을 무디게 해 줄 거야. 예전처럼 트럼펫을 볼 수는 없지만, 트럼펫이 진짜 떠난 건 아냐. 트럼펫은 네 마음 속에 있어. 언제까지나."

<설탕 한 컵>은 존 무스의 선 시리즈 중에 내 마음에 가장 큰 끌림을 준 이야기다. 죽음을 마주하고 애도하는 방식을 이토록 명쾌하게 그림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감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도록 하다니, 놀랍다!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가, 한없이 가벼운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가,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사진 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에 젖어 있다가, 장례가 끝난 후부터 애도는 시작된다. 유품에 각인된 하나하나의 추억에 사랑하는 이가 겹쳐지다가, 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고 먹으며 음식에 깃든 사랑을 감각으로 느끼기도 하고, 문득 바라본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서 떠난 이의 모습이 겹쳐지며 내 안의 그를 소중히 껴안아주기도 하고, 그를 기억하는 이들과 추억과 상실감을 공유하며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안에 함께 나이들어 가는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애도의 과정이 아닐까. 공허와 아픔은 시간 속에 잊혀지고, 추억과 기억·감각으로 되살아나는 것. 그래서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와 함께하는 것 말이다.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려면 곁에 있고, 말을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야 합니다. <설탕 한 컵>은 '겨자 씨 이야기'를 풀어 낸 것입니다. 키사 고타미는 죽음과 상실이 특별한 일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애디 역시 사랑하는 고양이와 나눈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 순간들은 애디의 인생에 울림을 줄 것입니다.

출처: <설탕 한 컵> 작가의 말 중

존 무스(Jon J Muth, 1960년 7월 28일 ~)

미술 교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미 전역 박물관을 견학했던 그는 18세 때 처음으로 그림, 드로잉으로 개인전을 가졌다. 일본에서 석조 조각과 서예를 공부했으며, 영국·오스트리아·독일에서 회화, 판화, 드로잉을 배웠다.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새로운 작은 존재'와의 관계를 탐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후 10년 동안 'Zen' 시리즈와 캐롤라인 케네디 시 선집을 포함하여 영감을 주는 많은 그림책을 쓰고 그렸다. 그의 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존 무스는 현재 연 날리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4명의 자녀와 함께 뉴욕 북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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