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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파리산책] 파리 짠순이의 벼룩잡기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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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파리산책] 파리 짠순이의 벼룩잡기 쇼핑
  • 황은비 기자
  • 승인 2020.02.04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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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여행하는 하나의 즐거움 '벼룩잡기 쇼핑'
-뱅브, 생투완 등 다양한 물건 한 자리에 모이는 전문시장 추천
-파리 전역에서 열리는 로컬 벼룩시장에선 현지인의 문화 엿볼 기회도
파리 벼룩시장은 ⓒ박지원
파리 벼룩시장에는 방대한 시대와 스타일의 다양한 물건이 모인다. ⓒ박지원

파리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다. 그녀는 패션계에 몸담은 데다 음식,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한 눈으로 보아도 남다른 안목이 집 곳곳에서 느껴졌다. 유니크한 소품 하나하나가 마치 그 자리를 위해 주문 제작한 듯 놓여 있었다. 그녀는 프렌치 풍 유리 쟁반에 각종 치즈와 견과류 등을 내고 샴페인을 터트렸다. 샴페인 잔은 요즘 보기 드물게 깊이가 낮고 입구가 넓은 앤틱 스타일이었다. 스타일도 스타일이지만 다섯 명이 모인 자리에 사용된 잔 모양이 다 제각기 다른 것도 내 눈에 신기하게 들어 왔다. 어떤 이는 입구가 금장으로 도금된 잔, 어떤 이는 꽃무늬가 정교하게 조각된 크리스털 잔…. 그러면서 하나도 촌스럽지 않고 마치 일부러 이렇게 내놓은 듯 보기에 흥미롭고 재미났다. 그 이후 테이블 위에 놓은 와인 잔, 식기, 포크와 나이프 등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삼십 년 전 결혼할 때 구입했던 레녹스 금장 식기 세트가 생각이 났다. 당시엔 살림살이를 세트로 장만하는 것이 마치 만능살림꾼이 되는 인증서처럼 여겨지던 시대였다. 고루한 스타일에 부피도 만만치 않았다. 잘 쓰지도 않는데 차마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그 세트가 눈앞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상반돼 혼자 웃음이 나왔다.

프랑스인들은 벼룩시장에서 독특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을 즐긴다. ⓒ박지원
프랑스인들은 벼룩시장에서 독특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을 즐긴다. ⓒ박지원

그 후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보통 프랑스에선 살림을 이래저래 물려 받은 물건을 쓰거나 벼룩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것으로 천천히 하나씩 장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거창한 살림살이보다 크리스털 잔 하나라도 소중히 여긴다. 물론 모두가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물건을 살 때 크게 형식이나 규모를 따지지 않는다. 게다가,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은 천천히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백사장에서 진주를 찾듯 안목을 높이는 경험적 교육이다. 나도 일년에 한두 번은 파리 외곽 지역에 있는 뱅브(Vanves) 또는, 쌩투완(Saint Ouen)의 벼룩시장에 간다. 두 곳 다 물건을 사는 재미와 더불어, 방대한 시대와 스타일 그리고 다양한 가격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또, 곳곳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사고파는 삶의 에너지에서 묘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쌩투완은 주변으로 유명한 맛집 카페가 자리하고, 규모가 큰 갤러리 급 상인들이 있기 때문에 백화점과 거리 상점이 문 닫는 휴일 한때를 보내기엔 적소이다.

이런 전문적인 시장 말고 작은 벼룩시장도 열린다. 각 구마다 돌아가며 배정된 날짜에 일 년에 한두 번 동네 주민들 위주로 개최하는 시장이다. 주민들이 직접 안 쓰는 물건을 처분하기도 하고, 떠돌이 앤틱 상인들도 진을 친다. 벼룩시장에서 만난 어린 소년이 기억난다. 대여섯 살 된 소년이 어릴 적 쓰던 나무 장난감을 팔고 있었는데, 내게서 20유로를 받아 들고 얼굴이 상기되어 엄마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산 동물 조각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나이 때부터 물건의 리싸이클링을 생활화할 정도이니 벼룩시장은 장터 이상의 뿌리 깊은 생활 정신이 함축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얼마 전에도 집 근처에 열린 마켓에서 사진 속 부엉이와 꽃병을 십 유로씩 주고 구입했다. 그 밖에도 어쩔 수 없이 상점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아니면 상당한 살림살이가 벼룩 잡듯 시장을 뒤져 마련한 것들이다. 천천히 걸으며 매의 눈으로 좇다 보면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물건을 저렴하게 득템할 수 있으니 어찌 이 즐거움을 포기하랴.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꽃병과 부엉이 ⓒ박지원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꽃병과 부엉이 ⓒ박지원

벼룩시장 쇼핑에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첫 번째가 물건의 독특함, 두 번째가 가격이다. 마치 아직 등용 못 한 예술가를 찾아내듯 나만의 눈으로 구입하는 ‘발품의 대가’가 그 매력이다. 또, 이런 곳에서 사는데 큰 금액을 들여 사면 무슨 재미와 의미가 있겠는가? 세 번째는 물건의 상태이다. 내 경우엔 가치가 좋으면 살짝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간 것은 개의치 않는다. 오래된 물건은 세월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오히려 그런 흠집이 흥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거래를 할 때는 마구잡이로 깎아내리기 보다는 물건과 주인의 안목을 높여주며 대화를 나누는 게 좋다. 언어의 장벽으로 대화가 안 되면 살짝 애원하는 귀여운 태도나 예의 바른 요청을 하면 오히려 기분 좋게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벼룩 잡으러 갈 때는 복장을 활동적이고 검소하게 하고 현금은 소액으로 나누어 깊숙이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파리나 유럽의 주요 도시를 방문할 때, 특히 한가한 주말이면 벼룩시장을 찾아 벼룩잡이를 시도해 보길 권한다. 지역별 벼룩시장 위치나 운영 일정은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글 박지원

패션 디자이너. 1989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파슨스 스쿨 패션디자인과를 수료했다. 귀국 후 김행자 부티크 실장으로 근무하다 1998년, 뉴욕에서 브랜드 'Park Ji Won'을 론칭했다. 이후 자신만의 언어로 자유와 새로운 여성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현재 사진과 글 다양한 표면적 장르의 아티스트로 활약하며, 프랑스인 남편, 자녀와 함께 파리에서 생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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