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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파리산책] 파리의 겨울을 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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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파리산책] 파리의 겨울을 나는 법
  • 황은비 기자
  • 승인 2019.12.26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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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다른 유럽 추위... 파리의 겨울을 견디는 방법
-먹거리, 볼거리 풍부한 튈르리공원 크리스마스마켓 풍경
-북적이는 마켓을 즐기며 연말을 보내는 파리 사람들
겨울에 유럽을 찾는 이들 대부분 마주하는 난제는 바로 한국과는 종류가 다른 추위일 것이다. ⓒ박지원
겨울에 유럽을 찾는 이들 대부분 마주하는 난제는 바로 한국과는 종류가 다른 추위일 것이다. ⓒ박지원

십 년도 지난 일이다. 이탈리아인 남편과 돌이 갓 지난 아들을 안고 유럽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그 겨울, 스산하고 어두운 날씨 속에 사람이며 건물, 사물 하나하나 애써 애정 어린 시선을 입히곤 했다. 겨울에 유럽을 찾는 이들 대부분 마주하는 난제는 바로 한국과는 종류가 다른 추위일 것이다. 온도는 한국보다 훨씬 따스하지만, 여행자는 이유를 모르는 한기에 감기몸살을 앓기 일쑤다. 이유는 현격히 떨지는 일조량과 높은 습도에 있다. 축축한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뼈마디를 다 시리게 한다. 게다가 낡고 오래된 건물은 대부분 옛날 라디에이터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실내에도 웃풍이 불고 으슬으슬 춥다.

익숙하지 않은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툴툴대던 내게 아기 아빠가 한 말이 있다. “날이 추운 것이 아니라 당신이 옷을 기후에 알맞게 안 입은 거라구!” 그 당시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말 안 되는 시비인가 싶어 서럽기까지 했다. 어찌 됐건 내 몸 추운 걸 어느 누가 따뜻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이런 추위에는 체력을 적응시킬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주의를 하면 감기에 걸리거나 체온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우선은 머리, 목, 손과 발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옛날엔 유럽 친구들이 유난히 두텁고 커다란 스카프를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그게 바로 유럽식 멋내기인가 했는데 진정 살다 보니 이 조차 다 실질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모자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여름에는 강한 일조량 때문에 기미나 주근깨 방지를 위해,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거의 일 년 내내 모자를 착용하거나 가지고 다닌다. 따뜻한 모자와 스카프, 장갑, 밑바닥이 두꺼운 구두와 양말이면 사지로 들어오는 축축한 습기와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11월 말이면 동네 중앙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박지원

매년 길고 긴 겨울을 어떻게 나나 싶어질 쯤, 11월 말이면 동네 중앙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 처음 유럽에 왔을 때부터 도시 가운데 들어서니 따뜻하고 술렁거리는 느낌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우울함을 극복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가운데가 뭉클해 온다. 마켓에는 평상시 보기 드물고, 크게 비싸지 않아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좋은 수공예품을 파는 코너들이 자리한다. 또, 사탕, 젤리, 누가나 초콜렛 같이 달콤한 것이 예쁘게 포장된 상자에 담겨 아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스위트 숍이나,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파는 코너도 있다. 이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바로 수제 돼지고기 햄을 먹음직스럽게 썰어 감자나 빵에 사워크라우트(독일식 시큼한 양배추 요리)와 먹는 요리다. 겨자를 듬뿍 넣어 먹으면 개운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고 한 끼 식사로 훌륭하다. 북유럽 나라 마켓에 가면 뱅쇼(계피와 오렌지 껍질 등을 넣고 데워 마시는 붉은 와인)와 함께 단골 메뉴다.

크리스마스마켓에는 이런저런 먹거리들을 파는 코너도 있다. ⓒ박지원

전에는 샹젤리제에서 그랑팔레까지 2km가 넘는 기나긴 길에 열리던 전통 깊은 크리스마스 마켓이 도시 미관과 안전을 이유로 루브르박물관 옆 튈르리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히려 코지한 느낌에 걷는데 피곤하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장소가 압도적으로 마음에 든다. 매년 그 장이 그 장. 그 물건이 그 물건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걷고 분위기에 젖어 외로움을 달래는 기나긴 겨울 한 토막을 환하게 밝혀 주는 이 전통이 한없이 감사하다. 올해는 생말로(브르타뉴)에서 온 어부들이 직접 들고 온 굴 코너가 있어 생굴을 곁들여 화이트 와인을 맛보며 현란한 불빛과 성탄의 장식들 속에 어른대는 지나간 한 해를 그려 본다. 또 이렇게 한 해가 내 나라가 아닌 다른 세상에서 가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이면 근본이야 다 같다고 주변을 스치는 각 나라 사람들의 표정도 그저 들떠 있지만은 않은 듯싶다. 삶의 시름을 애써 잊으며 길고 긴 겨울날 쓸쓸함을 달래려 무작정 나와 따스한 뱅쇼 잔을 거머쥔 손을 비벼가며 그저 그렇게 한 해를 보낸다.

 

 

글 박지원

패션 디자이너. 1989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미국 파슨스 스쿨 패션디자인과를 수료했다. 귀국 후 김행자 부티크 실장으로 근무하다 1998년, 뉴욕에서 브랜드 'Park Ji Won'을 론칭했다. 이후 자신만의 언어로 자유와 새로운 여성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현재 사진과 글 다양한 표면적 장르의 아티스트로 활약하며, 프랑스인 남편, 자녀와 함께 파리에서 생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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