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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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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 여하연 기자
  • 승인 2019.11.01 0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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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베롱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앙수이Ansouis, 퀴퀴롱Cucuron, 루르마랭Lourmarin.
이름도 귀여운 이 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 곳들이다. 대체 얼마나 아름다울까.

'최고’라는 타이틀은 식상하긴 해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뤼베롱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앙수이Ansouis, 퀴퀴롱Cucuron, 루르마랭Lourmarin. 이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힌 곳들이다. 대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은 인구가 2000명 이하인 작은 마을 중에서도 지방 특유의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곳에 수여되는 라벨이다.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157개나 있기는 하지만 실제 가본 마을들은 과연 명성처럼 아름다웠다. 

뤼베롱Luberon(지역 자연공원)이란 지명은 피터 메일이 쓴 <나의 프로방스>나 러셀 크로가 나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어느 멋진 순간>을 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카피라이터였던 피터 메일이 프로방스 시골 마을로 내려가 1년간 생활하면서 쓴 <나의 프로방스>의 배경이 바로 뤼베롱의 작은 마을 루루마랭이었다. 소박하고 유쾌한 프로방스 적응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프로방스식 삶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켰다.

뤼베롱의 전원 풍경 여하연
뤼베롱의 전원 풍경 ⓒ여하연

뤼베롱의 자연과 사람들에 반해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지역에 집과 포도밭을 샀다. 뤼베롱은 마을 전체가 지역 자연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줄기 3개가 뤼베롱 한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작은 마을들은 산맥의 북쪽과 남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앙수이는 관광객은 물론, 돌아다니는 마을 사람조차 많이 눈에 띄지 않는 작은 마을이다.

앙수이성. 개인 소유지만 신청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여하연
앙수이성. 개인 소유지만 신청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여하연

앙수이성에서 시간 여행을 떠나다 

이곳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앙수이성이다. 유럽에서 성은 아주 흔하지만 앙수이성은 특별하다. 10세기에 지어진 성과 17~18세기에 지어진 성이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구조다. 앙수이성은 10세기에는 요새로, 17~18세기에는 즐거움을 위한 성으로 사용했다. 밖에서 보면 하나로 보이는 성은 안으로 들어오면 오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앙수이 성 내부. 17-18세기 물건들로 채워져있다. ⓒ여하연
앙수이 성 내부. 17-18세기 물건들로 채워져있다. ⓒ여하연

중세시대에 지어진 성에는 30미터 깊이의 우물과 작은 성당이 있다. 17~18세기에 지어진 건물에는 17~18세기의 가구와 물건들이 채워져 있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에라도 온 듯, 고풍스럽고 진귀한 물건들은 집주인이 하나하나 어렵게 구한 것이라고 한다. 물건 중에는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용했던 개집도 있다. 중세와 17~18세기를 시간 여행하듯 오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성의 묘미이다.

퀴퀴롱. 마을 광장 한 가운데 연못 ⓒ여하연
퀴퀴롱. 마을 광장 한 가운데 연못 ⓒ여하연

퀴퀴롱. 중세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을 

앙수이성에서 나와 퀴퀴롱으로 향했다.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한 이 시골 마을은 한국 천주교회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첫 한국인 사제 성 김대건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제3대 조선대목구장 장조셉 페레올Jean-Joseph Ferreol 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700여 년 동안 퀴퀴롱을 지켜온 성문을 지나면 시간 여행을 온 듯 마을 곳곳에 중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한눈에 봐도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오래된 건물들이 서 있는 마을 광장 한가운데, 나무로 둘러싸인 커다란 연못에는 따뜻한 가을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을 찾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페레올 주교가 세례를 받았던 성당, 노트르담 드 볼리외Notre-Dame de Beaulieu를 지나치지 못한다. 1720년, 3000명이 살던 이 마을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2000명이 사망했다. 퀴퀴롱 주민 모두가 맨발로 성당에 달려가서 살려달라 빌었고, 페스트가 끝난 후 매년 5월이면 나무를 지고 성당까지 걸어가는 의식을 벌인다.

루르마랭의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여하연
루르마랭의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여하연

루르마랭. 카뮈가 사랑한 마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을, 루르마랭으로 향했다. 병풍처럼 사방을 감싼 뤼베롱산맥 아래 사이프러스 나무가 무성한 이곳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정착했고, 잠든 곳이다. 스승 장그르니에는 카뮈를 루르마랭에 초대했고, 카뮈는 루르마랭의 자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넓은 포도밭과 푸른 산은 카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알제의 평원과 산을 연상시켰고 알이 굵고 검은 포도는 몽도비의 포도를 떠올리게 했다. 카뮈는 평온한 표정으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드디어 내가 묻힐 묘지를 찾았기 때문이죠”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루르마랭에는 카뮈가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마련했던 집과 무덤이 있다. 한낮에 찾은 카뮈의 무덤은 부조리를 다뤘던 그의 소설과, 그의 비운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가 정말로 사랑했던 곳에 묻혀서일지도 모른다.

루르마랭은 중세시대에 요새 역할을 했던 마을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탁 트인 벌판 위에 서 있는 성이다. 요새로 쓰이다 폐허가 된 것을 15세기 렌느 1세의 시종이었던 풀크 다구가 다시 지었고, 프랑스 혁명 이후 다시 폐허로 변해가던 중 1920년 로랑 비베르가 사들여 재건했다. 그는 1925년에 죽으면서 로랑 비베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엑상프로방스 예술 문화 단체에 기부해서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도록 했다.

루르마랭을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곡선으로 된 여러 개의 길이 만나는 작은 광장, 지중해의 햇살을 닮은 건물에 드리워진 담쟁이덩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카페의 야외 테라스, 개성 있는 물건을 파는 공방과 숍 등 다정하고 따스한 기운이 골목 전체에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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