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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 ③ 글로벌 여행 홍보 전문가 낸시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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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이 만난 길 위의 여행자 ③ 글로벌 여행 홍보 전문가 낸시 최
  • 트래블러뉴스
  • 승인 2019.10.0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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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항공사의 재기발랄한 ‘춘자’씨가 도도한 카리스마의 글로벌 관광홍보 전문가 ‘낸시’로 변모하기까지의 ‘인생 여행 일정표’가 흡사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다.

 

글로벌PR전문회사 씨제이스월드(C.J.’s World)의 대표 낸시 최. 여행업계에서 그녀는 가히 '왕언니'같은 존재다. 한국인 최초로 외국 관광청 업무를 도맡은 주인공인 데다, 1990년부터 다섯 살 손주가 있는 할머니가 된 지금까지 비수기 하나 없이 이 분야에서 매번 얄미울 만큼 도드라진 성과를 써내려왔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피오르가 국내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가 된 것도, 음악 도시 비엔나와의 문화교류가 시작된 것도 그녀의 남다른 PR 솜씨에 힘 입은 바 크다.

좋아하는 ‘여행’이 선물해준 짜릿한 터닝 포인트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여행업계에서 ‘무서운 왕언니’로 불린다. 현재 한국에 사무실을 설치한 외국의 관광청사무소는 약 30여개 남짓. 그곳의 대표들 중에 가장 경력이 길고 나이 또한 많다. 그러나 앞에 굳이 ‘무서운’이란 얄궂은 수식어가 붙어 있는 이유는, 그녀가 업무나 일에 관한 정보, 심지어는 외모관리까지 무섭도록 철저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5년 전쯤 그녀가 주최한 노르웨이관광 미디어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조선호텔 볼룸에서 노르웨이 풍경을 담은 비디오도 보고 맛있는 식사까지 마친 다음 그녀와의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허리에 팔을 둘렀을 때 솔직히 매우 놀랐다. 흡사 갑옷처럼 건강하고 탄탄하게 관리된 신체의 감촉이 옷을 뚫고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도저히 손주까지 있는 할머니의 몸매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관리도 열심히 하지만 행사 땐 속옷의 힘을 빌리곤 해요.(웃음) 그래야 나이도 잊고, 자세도 꼿꼿해지고, 일에 자신감도 붙거든요.”

프레지던트호텔 사무실에서 낸시 최 ⓒ강신환
프레지던트호텔 사무실에서 낸시 최 ⓒ강신환

〈더 트래블러〉가 만든 온라인 뉴스 채널 ‘트래블러뉴스’와의 인터뷰 날에도 붉은 장밋빛 원피스를 입고 나타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든 그녀였다. 필자가 입고 있던 땡땡이 블라우스의 브랜드까지 단박에 알아맞힐 만큼 패션에 대한 열정도 지대해 보인다.

“저는 나이 들수록 꾸며야 된다고 생각해요. TPO를 맞춘다는 건 클라이언트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첫 번째 요소죠.”

그래서일까? 그녀는 부침이 심한 관광청 사무소 입찰 경쟁 속에서도 30년째 꿋꿋이 규모를 유지해오고 있다. 하와이, 올랜도, 오스트리아, 필리핀, 헝가리, 포르투칼, 그리스, 핀란드, 덴마크 등의 첫 한국 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지금은 잘츠부르크주 관광청, 노르웨이와 독일 관광청, 멕시코 칸쿤 호텔 등의 홍보 일을 맡고 있다.

글로벌PR전문회사인 지금의 ‘씨제이스월드(C.J.’s World)’의 터를 닦은 1990년 당시부터 4개의 관광청 일을 한꺼번에 맡았던(하와이, 오스트리아, 올랜도, 필리핀) 그녀에게 질시의 시선이 쏟아졌던 건 어찌보면 당연지사. 하지만 피하지 않고 주한 외국인 관광청 대표들과의 모임인 ‘안토르‘(ANTOR, KOREA)에 꼬박꼬박 나가 그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그녀다운 양해(?)를 구했다.

이제 나이 탓에 돋보기 안경을 쓴 채 영어로 된 깨알 같은 서류를 매일 들쳐보는 그녀는 언제부터 관청청 업무를 하게 됐을까?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맨 처음 들어간 직장이 외국 항공사(Pan Am)였어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꿈의 직장이었죠. 당시엔 무슨 자신감이 그렇게 넘쳐났는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다니까요. KLM을 거쳐 노스웨스트항공에서 일할 때 월드폭스라는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관리, 운영했는데 승객들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까지 대한항공에는 없는 프로그램이었거든요.”

그녀의 업무 스타일에 깊은 매력을 느낀 금발의 하와이 관광청 국장이 그녀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외국에는 PR 마케팅 업무가 활성화돼 있으니 따로 독립해 하와이 관광청 일을 맡아달라고 말이다.

“Where is your new namecard?(너의 새 명함은 어딨니?)

만날 때마다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는 그의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드디어 해외여행 관련 홍보 업무를 맡게 된 것이 1990년. 한국인으로선 최초의 외국 관광청 설립이었다. 본명 대신‘ ‘낸시’라는 이름으로 명함을 바꾼 것도 그 무렵이었는데 이 대목에서 슬쩍 밉지 않은 자기 PR이 끼어든다.

“항공사 재직 때 벤쿠버 친구 집으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몇몇 외국인들이 저더러 중국 배우인 낸시 콴(Nancy Kwan 1939~ )을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난 그녀보다 더 예쁘고 날씬했는데.”

낸시 콴이 누구인가? 헐리우드에서 성공한 최초의 중국인 여배우로서 가냘픈 얼굴과 몸매에 청순미까지 더한 미인 아닌가. 윌리엄 홀든이란 미남 배우와 함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영화 ‘수지 웡의 세계’에 출연, 아카데미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요즘으로 치면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단박에 스타가 된 여배우랄까? 60년대 말 한국 남자들의 최고 이상형이었던 그녀보다도 예뻤다고?

“어느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PR과 마케팅 일은 자신감이 기본이에요. 본인이 잘났다고 생각해야 남들을 설득할 수가 있답니다.”

독일과 노르웨이의 유명 셰프를 초청해 국내 호텔에서 열렸던 미식 체험 행사 ⓒ낸시 최
독일과 노르웨이의 유명 셰프를 초청해 국내 호텔에서 열렸던 미식 체험 행사 ⓒ낸시 최

나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 경험과 연륜에 자신감을 더하다

처음 롯데호텔에 사무실 문을 연 그녀는 전화국에 번호를 신청하러 갔을 때 이런 만용(?)까지 부렸다. '앞으로 잘될 사람이니까 좋은 번호를 줘야 한다‘고. 그때 받았던 773- 6430 같은 몇몇 번호는 사무실을 조선과 프레지던트호텔로 옮긴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다.

겉으론 화려해보이는 관광청 업무는 사실상 ‘을’의 작업일 때가 많다. 본국에서 책정한 적은 예산으로 최대의 홍보 효과를 얻어 해당 국가에 되도록 많은 한국 관광객을 보내야 한다. 콧대 높은 각 언론사 기자들이나 여행사 직원들을 초청해 일 년에 두세 번씩 팸투어나 포럼을 여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다행히 그녀는 골치 아픈 세일즈 업무는 처음부터 사양해 오고 있지만, 홍보 마케팅의 결과인 방문객 숫자에는 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로 유명한 잘츠부르크주의 올해 한국인 방문객 수는 8만7천여명. 그 자그만 시골마을이 수도인 비엔나 방문객 수(5만6천여명)를 훨씬 웃돈다. 수년간 피오르의 아름다운 풍광에 홍보 초점을 맞춘 노르웨이 방문객은 6월 방문객이 작년 대비 27%나 신장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일에 어찌 좋은 날만 있겠는가? IMF 때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떨어져 나갔고, 십수년 홍보를 맡아온 비엔나 포함 오스트리아관청은 방문객 숫자가 더 늘지 않아 아예 한국에서 철수하는 사태도 있었다. 최근에는 믿음과 의리가 작동하던 관광청 선정 시스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 거의 매년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저는 되도록 경쟁을 안 하려고 해요. 경쟁이라는 것은 다 고만고만하다는 얘기기 때문에 경쟁을 안 해도 되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는데 주력하고 있죠. 이를 테면 남들이 안 해본 새로운 PR방법이나 이벤트를 찾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그녀가 성사시킨 일 중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1996년 비엔나에서 열렸던 KBS ‘열린 음악회’. 같은 해 한국 공연을 가진 잘츠부르크의 〈사운드 오브 뮤직〉 팀이 당시 지휘를 맡았던 KBS 방송교향악단의 김광섭 지휘자에게 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비엔나와 문화교류에 물고를 튼 'KBS열린음악회' 포스터 ⓒ낸시 최
비엔나와 문화교류에 물고를 튼 'KBS열린음악회' 포스터 ⓒ낸시 최

“너무 잘한다고 감탄하니까 그 악단 멤버 그대로 비엔나에 가도 통할 거 같더라구요. 비엔나가 워낙 유명한 음악의 도시이긴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과 별다른 문화교류가 없었거든요. 곰곰 생각해 보니 양국간의 물꼬를 트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겁도 없이 뛰어들었죠.”

사실 일개(?) 관광청이 추진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큰 프로젝트였다. 악단 멤버들과 출연가수들, 방송스태프까지 합치면 비행기를 통째로 전세 내도 모자랄 정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비엔나까지 원스톱으로 가는 비행기편이 드물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비엔나직항 편을 띄우던 아시아나항공(96년경 노선 폐지)이 협찬하겠다고 나섰다가 대한항공으로 바뀌고 LG그룹이 빅 스폰서로 나서기까지 우여곡절 애를 태웠다.

“출연진도 화려했어요. 가수 김건모와 조영남에 바리톤 김동규, 소프라노 조수미가 한 무대에 올랐죠.”

구정 설날 특별공연으로 진행됐던 이 무대 덕분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높아졌음은 물론, 그곳 대통령의 공식방한도 그 얼마후 이뤄졌다고 한다. 유명한 비엔나 신년 음악회는 다음 해 신년 특집 때, 동아일보 1면 톱기사로 다뤄졌을 정도. 만약 그녀가 주어진 ‘을의 업무에만 매달렸더라면 성사되기 어려웠던 그 일은 관광청 홍보업무에서 크레에이티비티(Creativity)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일깨운 경험이었다. 그 밖에도 LA 디즈니랜드보다 큰 놀이시설을 자랑하는 올랜도 디즈니월드의 경우, 〈새벗〉이라는 아동잡지와 손잡고 매달 1명씩 추첨을 통해 어린이 독자를 보냄으로써 그 부모들까지 관심을 갖게 만드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진정한 창의성은 늘 홍보 마케팅의 결과까지 예상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관광청 일은 경험과 연륜이 중요하죠. 책임자의 나이가 몇이든 실무에서 손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아직도 저는 사원들이 제출한 서류를 일일이 검토하는데, 좀 깐깐한 상사일지는 몰라도 도움이 된다는 소리를 들을 때 행복합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포럼에서 ⓒ낸시 최
오스트리아 관광청 포럼에서 ⓒ낸시 최

'노르웨이의 힘은 자연에서 나옵니다(Norway, Powered by Nature)'나 '챠밍 오스트리안(Charming Austrian)' 같은 매력적인 홍보 문귀는 끝까지 맥을 놓지 않는 그녀의 심사숙고 끝에 탄생했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 관광청의 일년 평균 예산은 얼마나 되는지.

“그건 좀! 예민한 문제라서 답하기 곤란하네요. 역사가 깊고 안정된 유럽의 경우 동남아 국가들보다 적은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는 한국인 방문객이 많지 않았으니까 관광청을 개설하는 속도도 느렸는데 요즘은 한국 마켓에 대한 관심이 늘었지요. 사실 관광청 업무만으로 큰 돈을 벌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여행지를 개발해낸다거나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 좋아하는 여행을 남보다 많이 다닐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직업이죠. 특히 여자들의 섬세한 기질에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양국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민간외교 사절로서의 보람도 크구요.”

오스트리아 관광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 수상 ⓒ낸시 최
오스트리아 관광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장 수상 ⓒ낸시 최

2010년 오스트리아 관광에 기여한 공로로 은장 훈장을 수여한 적이 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일을 계속할 거냐고. 이제 그만 쉬고 싶은 나이 아니냐고. 그녀의 대답은 명확했다.

“영원히! 할 수 없을 때까지. 제가 다섯 살 난 손녀가 있는데요, 그애가 학교 숙제에 이렇게 써 넣었다고 하더군요. ‘우리 집 낸시는(손녀조차 그녀의 이름을 부른단다) 집에 오면 늘 명상만 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신문을 열심히 읽는다’라구요. 손주들 뒷바라지 하느라 손 마를 날 없는 다른 할머니들과 확연히 다르니 그게 엄청 신기하게 느껴졌나 봐요. 그러면서도 ‘아들도 남편도 나는 머릿속에 일하는 여자’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죠. 덕분에 100살이 될 때까지 밥 안하고(웃음) 얼마든지 일만 할 수 있답니다. 언젠가 런던의 한 고급백화점에서 가죽장갑을 구매한 적이 있는데, 숍 매니저들이 직접 제 손에 장갑을 끼워주는 우아한 서비스를 받았어요. 마치 귀부인이 된 것 같았죠. 이처럼 소소하지만 특별한 재미 때문에라도 이 일에 더 애착이 갑니다.”

그러나 지금 맡은 일 외에 더 많은 국가들을 추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그녀.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관광청 관계자들과 수백 명은 족히 넘는 각 언론사 기자들-과 오래 눈 맞추면서 지치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좌우명이자 가장 큰 성공비결이 된 말은 ‘어제와 같이 오늘을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오늘, 그녀는 여전히 실무를 보며 새로운 이벤트 계획을 세우고 실적을 점검한다. 그녀는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원한 현역이다.

 

낸시 최와 이형옥 대표 ⓒ강신환
낸시 최와 이형옥 대표 ⓒ강신환

이형옥

<주부생활> 기자, <우먼센스> 편집국장을 거쳐 더북컴퍼니의 창립 멤버 중 하나로 <싱글즈>를 창간했다. 이후 하나투어와 함께 만든 여행 콘텐츠 회사 하나티앤미디어의 대표로 재직하며 글로벌 감성 여행 매거진 <더 트래블러>를 창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14년부터는 국내 유일의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의 편집 고문을 함께 역임하며 국내외 여행, 음악, 미술, 공연 등과 관련한 다양한 플랫폼 제작에 앞장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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